[박선현의 쩐] 위기 때마다 성장한 한국 금융업

입력 2020-0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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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 차장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최근 한 금융지주 회장이 임원들에게 한 말이다. 경자년(庚子年) 사업계획을 받아든 그는 자신의 30년 뱅커 생활에 올해가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거라며 걱정했다. 그의 근심은 숫자에서 비롯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신한ㆍKB·하나·우리금융지주의 올해 순이익은 11조42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11조7100억 원)보다 2.5% 감소한 것으로, 5년 만의 첫 마이너스 성장이다.

더 큰 걱정은 지붕을 받치는 기둥뿌리, 즉 건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물경기가 위축되면서 기업 대출, 특히 중소기업 여신 연체율이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다.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급한 불은 껐으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지난해 구조조정 대상기업 210곳 가운데 96%가 중소기업이었다. 400조 원을 넘어선 자영업 대출도 소비위축과 함께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저소득층의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식당과 편의점 사장님들의 곡소리는 여전하다.

하지만 시계열을 돌려보면 한국 금융업은 위기 때마다 성장했다. 2008년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을 때 전 세계 금융시장은 물론 한국도 아비규환이었다. 코스피지수는 900선 아래로 폭락했고, 환율은 달러당 1500원까지 치솟았다.

금융상품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면서 ‘고등어펀드(반 토막)’, ‘갈치계좌(4분의 1토막)’가 속출했다. 흉흉한 민심은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급하게 돈(금리 인하)을 풀었고, 내수 활성화에 힘을 쏟았다. 수출 시장을 개발도상국 등으로 다변화하고, 자원과 부품의 수입선을 늘리면서 체력을 키웠다. 그 결과 금융위기 당시 700bp(1bp=0.01%포인트) 선까지 치솟았던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최근 27bp까지 떨어졌다.

미ㆍ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에도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의 경제 기초체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얘기다. 그 덕에 한국의 금융발전지수는 3년 전 일본과 홍콩, 프랑스 등을 제치고 세계 6위에 올라섰다.

1997년 환란(換亂) 때도 비슷했다. 한라, 삼미, 해태 등이 문을 닫으면서 몸통 경제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은행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한일, 조흥, 평화은행 등이 문을 닫으면서 200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 금융을 쥐락펴락하던 ‘조상제한서(조흥ㆍ상업ㆍ제일ㆍ한일ㆍ서울)’가 사라졌다. 곳곳에선 ‘조기(조기 퇴직)’와 ‘명태(명예퇴직)’가 쏟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 또한 기회로 삼았다. 기업들은 몸집을 줄이고 미래 먹거리를 고민했다. 정부도 각종 규제를 풀며 투자를 독려했다. 혹자는 IMF 위기가 삼성전자와 LG전자, 포스코 등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올해는 ‘쥐’의 해다. 설화 속 쥐는 지혜롭고 부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안갯속으로 접어든 한국 금융업에 쥐의 기운이 전해지길 간절히 바란다. 전통 금융업에서 벗어나 핀테크를 활성화하고,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수익원을 다변화한다면 10여 년 전, 20여 전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위기를 발판 삼아 성장할 것이다. sun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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