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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제소 한 달 만에 마주 앉은 한일…11일 제네바서 국장급 양자 협의

입력 2019-10-10 09:07

최대 쟁점은 'GATT' 위반 여부…1심 '패널' 구성은 11월 넘길 가능성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제네바/신화뉴시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제네바/신화뉴시스)
한국이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지 한 달 만에 두 나라 통상 당국이 협의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제소 한 달 만의 양자 협의…WTO 분쟁 '첫 관문'

=한일 양국은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관한 양자 협의를 연다. 지난달 11일 우리 정부가 한국을 겨냥한 일본의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원자재(플루오린 폴리이미드ㆍ레지스트ㆍ고순도 불화수소) 수출 제한을 WTO에 제소한 지 꼭 한 달 만이다.

양자 협의는 WTO 분쟁 해결을 위한 첫 단계다. WTO는 분쟁 해결 절차가 시작된 지 30일 안에 분쟁 당사국들이 양자 협의를 열도록 하고 있다. 상대국의 주장을 파악하고 법리 다툼 전에 합의점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다. 피소국(被訴國)이 협의를 거부할 수도 있지만, 협의 거부는 앞으로 진행될 분쟁 해결 절차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는) 협의 대상이 아니다"고 수차례 주장해온 일본이 양자 협의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日 '국장급 협의' 제안 수용…정해관ㆍ야마가미, 다시 맞붙나

=이번 양자 협의에서 두 나라는 국장급을 수석 대표로 파견키로 했다. 내실 있는 논의를 하기 위해선 고위급 협의가 필요하다는 한국 요구를 일본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간엔 과장급 실무진이 대표로 파견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WTO 분쟁 해결 절차에 앞서 열리는 양자 협의는 형식적인 자리가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은 한국과의 고위급 논의를 줄곧 거부하며, 과장급 실무진 간 회동만 고집해왔다. 국장급 협의 성사를 두고 일본이 전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아직 평가하긴 이르지만 국장급 협의엔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측 수석대표는 통상 분쟁 업무를 총괄해 온 정해관 산업부 신통상질서협력관(국장)이 맡았다. 일본 측에선 WTO를 담당해 온 야마가미 신고 외무성 경제국장이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국장과 야마가미 국장은 한일 수산물 분쟁, 공기압 밸브 분쟁에서도 맞붙었다. 앞선 두 번의 대결에선 모두 정 국장이 승리를 거뒀다.

◇한국, 수출 규제 원상회복 요구…최대 승부처는 'GATT'

=양자 협의는 한국이 앞서 제출한 '양자 협의 요청서'를 중심으로 일본 수출 규제의 위법성을 따지면 일본이 그를 반박ㆍ해명하는 방식으로 열릴 전망이다. 양자 협의 요청서에서 한국 측이 제시한 국제법적 근거는 '상품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ㆍ'무역원활화협정(TFA)'ㆍ'무역 관련 투자조치에 관한 협정(TRIMs)'ㆍ'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ㆍ'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등이다.

이 가운데 핵심 승부처는 회원국이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것을 금지한 GATT 11조다. 제한적 수출 허용 등 무역 통제를 통해 수입국의 원자재 수급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면 GATT에 어긋난다는 게 WTO의 그간 판례다. 수출 규제 이후 지금까지 일본이 3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원자재의 한국 수출을 허가한 건은 고순도 불화수소 3건, 레지스트 3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1건 등 7건뿐이다. 한국 대표단은 투자와 기술 이전, 서비스 무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출 제한 조치를 금지한 TRIMs, TRIPS, GATS 등으로도 일본을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일본은 GATT 20조와 21조를 방패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GATT 20조와 21조는 각각 법령 준수와 안보 이익 보호를 위해 예외적으로 무역 제한 조치를 인정한다고 규정한다. 일본은 일본산 전략물자가 한국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될 수 있다며, 한국에 대한 수출 통제는 자국의 전략물자 관리 법규에 따른 조치라고 주장해왔다. 일본이 안보를 들고 나오면 법리 공방이 길어질 수 있다. WTO 분쟁 해결 절차에서 안보 목적의 무역 제한이 쟁점이 된 적이 많지 않아 참고할 만한 판례가 적기 때문이다.

◇산업부 "패널 설치 요청 시점, 신중히 검토"…2차 협의 가능성도

=WTO 규정상으론 양자 협의에서 양국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 제소일 이후 60일이 지날 때부터 1심 격인 패널 설치를 요청할 수 있다. 이번 건의 경우 다음 달 10일부터 1심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패널 설치를 요청하면 판정이 나오는 데는 그로부터 약 15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빨라도 2021년 이후에나 1심 판정이 나온다는 뜻이다. 패널심에서 어느 한 나라가 승복하지 않고 2심이자 최종심인 상소심까지 가면 분쟁이 3년 이상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다음 달 바로 패널 설치를 요청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좋지 못하다"며 "시점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양자 협의 이후 바뀔 수 있는 상황을 제때 반영하지 못할 수 있어서다. 패널 설치 이후엔 분쟁 해결 절차의 쟁점을 추가하거나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산업부 안에선 일본과의 2차 협의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다른 산업부 관계자는 "내실 있는 논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협의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추가 협의가 열리려면 일본이 동의해야 한다

정부는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ㆍ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한 일본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을 WTO에 제소하는 것에 대해선 아직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시행이 8월 말 이뤄져 피해 규모를 추산하기 이르고, 백색 국가 배제까지 한꺼번에 제소하면 전선이 지나치게 넓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백색 국가 배제에 따른 국내 기업의 피해 사례를 모으고 있는 단계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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