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미·중 무역전쟁, 플라자 합의 때와는 다르다

입력 2019-06-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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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0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에 대하여 25%의 관세 부과 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그동안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협상이 타결될 듯한 조짐도 보였으나, 결국 양국이 전체 교역 품목에 대하여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미·중 간 통상관계가 전면적 무역전쟁으로 치닫게 된 데는 미·중 간 무역마찰이 30여 년 전 미·일 간 무역마찰과 다르지 않다는 트럼프의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여러 피상적인 거시경제 지표를 보면 최근 미·중 무역전쟁의 배경이 30여 년 전 미·일 간 무역마찰의 데자뷔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1980년대의 대부분을 집권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할리우드 스타 출신으로, 리얼리티쇼 호스트 출신인 트럼프에게는 영웅일 수 있다. 레이건이 1981년 1월 대통령으로 취임할 당시 미국의 저축률은 7.8%였고 경상수지는 균형 수준에 가까웠다. 카우보이 문화의 재현을 꿈꾸었던 레이건은 부자 감세를 실행하였고, 그 결과 2년 만에 저축률은 3.7%로 추락하면서 재정수지와 무역수지는 만성적 적자구조로 빠져들었다. 당시 미국의 무역적자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42%였다.

레이건은 세금을 파격적으로 깎아주는 자신의 포퓰리즘 정책이 초래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일본의 부당한 보호무역 조치와 환율 조작 그리고 미국의 첨단기술을 훔쳐가는 기술 절도 행위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일본을 압박하여 엔화의 가치를 높이는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바로 지금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더더욱 코미디 같은 일은 30여 년 전 소위 ‘일본 혼내기(Japan Bashing)’ 정책의 실무를 맡았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지금은 미국의 무역대표부 수장이 되어서 ‘중국 혼내기’를 지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의 전체 무역수지 적자에서 중국의 비중은 48%다. 또한 경상수지 적자는 2018년 기준 GDP 대비 2.6%, 무역수지 적자는 4.5%에 달한다. 이런 거시경제 지표들이 미국의 ‘중국 혼내기’ 정책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인용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요인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신흥 패권국가인 중국에 대한 견제, 특히 국가안보 이슈와 연결된 중국 견제론이다. 과거 남북전쟁 때의 남군과 북군과의 간극보다도 더 벌어진 듯한 공화당과 민주당이 믿기지 않게 동의하는 대목이 중국에 대한 적대감이다. 그 결과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정치인들이 아무 비용도 들이지 않고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전략이 대중국견제법안을 발의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눈앞의 정치적 표 계산에 몰두하는 공화당과 민주당 공통의 중국 길들이기 정책이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미국이 과거 경험했던 패권경쟁은 소련과의 체제경쟁과 일본과의 무역전쟁으로, 모두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트럼프는 그런 미국의 승리가 미·중 간 무역전쟁 및 패권경쟁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련과 체제경쟁 당시 대(對)소련 무역비중은 0.25%에 불과했지만, 지금 중국과의 무역은 전체의 13%를 초과한다. 즉 과거 소비에트연방의 붕괴가 미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였지만, 중국 경제의 붕괴는 미국 경제에도 심각한 위기 요인이라는 점이다. 또한 30여 년 전 통상마찰 때 일본을 몰아붙였던 전략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과거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던 일본과 지금의 중국은 완전히 다른 상대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과거 레이건 시절보다 더욱 얄팍한 정치적 목적으로 대중영합적 국내 정책과 통상정책을 펴고 있기에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무런 일관된 정치적 신념도 없이 가문의 비즈니스를 지상 최대 가치로 삼고 있는 트럼프가 현재의 막무가내식 무역전쟁과 보호무역 정책이 자신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그랬듯이 정책을 180도 바꿀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것을 언제 깨닫는가 하는 것이다. 설령 최악의 시나리오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에도, 돈과 권력 이외에 아무런 가치기준이 없는 트럼프가 무역전쟁을 필생의 종교로 신봉할 이유는 없다. 그런 만큼 향후 국제무역 환경은 트럼프가 오로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도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 체제의 부활 노력이 트럼프에게 얼마나 심각하게 작용하는가에 달려 있기도 하다.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가 고래를 춤추게 할 수도 있는 여지가 충분히 열려 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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