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동걸 산은 회장의 용기

입력 2019-02-18 08:49 수정 2019-07-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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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자본시장2부장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하려 한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우선협상자가 됐다. 만약 성공한다면 20년 만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우조선의 주인이 민간사업자로 바뀐다.

대우조선은 2000년 대우그룹 해체에 따라 산업은행 주도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 이후 수차례 매각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정치권을 의식한 공무원은 이른바 대우조선 처리에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했다. 여기서 사회적 합의란 직접적으로는 여야의 합의를 말한다.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이 투입됐으니 사회적 합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공무원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변질되다 보니 매번 실기하고 말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2008년 매각 입찰에선 포스코-GS 컨소시엄, 한화, 현대중공업이 경쟁했는데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한화와의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그 이후 조선업은 곤두박질쳤고, 한화는 가슴을 쓸어내린 반면, 산업은행은 무려 7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또 쏟아부어야 했다.

따라서 이번 시도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 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산은 회장이 공무원 출신이었다면 국회의원 눈치 보고, 청와대 서별관회의 쫓아다니다가 책임을 또 후임자에게 넘겼을 것이다.

이동걸 회장이 ‘스토킹 호스’ 방식을 선택한 것도 신속 매각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스토킹 호스란, 인수의향자를 사전에 확보한 상태에서 공개입찰을 진행해 응찰자가 없으면 인수의향자가 최종 인수예정자로 확정된다. 더 나은 조건을 낸 응찰자가 있다면 기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법원이 법정관리 기업이 정상화됐다고 판단될 때 신속한 매각을 위해 주로 쓰는 방식이다. 산은은 현대중공업과 먼저 매각 협상을 진행하고, 후순위로 삼성중공업에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이 구조는 공정성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왜 처음부터 삼성중공업이 아니라 현대중공업을 선택했는지,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은이 무슨 이유로 현대중공업과 먼저 협의를 진행했는지, 이동걸 산은 회장과 현대중공업 회장이 무슨 관계인지 외부에선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도 꾸준히 대우조선 인수 후보로 거론은 됐지만 매번 부인했었는데,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는지가 궁금하다. 이런 논란을 의식하지 않고 산은이 현대중공업과 먼저 매각 협상을 진행한 것은 현실성을 앞세운 판단이요, 용기라고 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지주에 중간지주사를 만드는 것도 인수합병(M&A)시장에서 종종 등장하는 구조화의 일환이다. 대우조선을 인수하게 됐을 때 현대중공업지주의 가장 큰 리스크는 지주 내 조선업 비중이 너무 높아지는 것이다. 혹시나 조선업이 다시 가라앉으면 현대중공업지주 전체로 리스크가 확산하기 때문이다. 이런 리스크는 중간지주라는 형태로 어느 정도 희석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우조선 매각건은 이제부터 공무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수조 원대의 국유재산 딜을 하려면 걸림돌이 한두 개가 아니다. 민간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 이번 합병에 대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도와줘야 한다. 어느 정도 사전 조율은 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공정위의 판단이 매우 중요해졌다. 산은이 국제적인 파장을 면밀히 검토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세계 1위와 2위 조선사 간의 합병이다. 어떤 상황, 업종을 막론하고 세계 1위와 2위 간의 합병은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여러 경쟁국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이동걸 회장이 할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여기까지인지 모른다.

민간이 조정할 수 없는 범위에선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 모든 것을 다 검토하지 못했다고 미숙함과 잘못만 지적하면 일은 진행되지 못한다. 공적자금 회수와 조선업 구조조정이란 두 가지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범정부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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