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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이상훈 아프리카 구호개발전문가 “개발협력의 첫 덕목은 존엄성”

24년 전 NGO에서 아프리카와 인연…경험담 모아 '사람을 사람으로' 책 펴내...“인구 1200만ㆍ의사 900명인 르완다에 내년초 병원 개원 계획…언젠가 대학 설립 꿈”

▲이상훈 교수
▲이상훈 교수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올 한 해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연탄재처럼) 뜨거운 사람이었던가 문득 돌아보게 된다. 길거리에서 구세군의 빨간 냄비를 만나면 지갑 속 얼마라도 꺼내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가 줄어드는 가처분소득에 그간 기부하던 월정액을 내년에도 계속해야 할까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일 년 중 가끔 ‘주변의 이웃을 돌아봐야지’ 생각하며 살 것이다. 그런데 20년 넘게 아프리카에서 구호와 개발 활동을 하며 살아온 이가 있다. 스물여덟 살에 운명처럼 아프리카를 맞닥뜨린 그는 그곳에서 좌절하다 행복하다 분노하다 반성하다…그렇게 지금까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개발 NGO(국제기아대책기구)에서 개발협력 분야를 개척한 1세대 구호현장 활동가이자, 선교사이며, 대학 교수(르완다 개신교대학 개발학)인 이상훈(51·사진) 씨가 이달 초 자신의 20여 년간의 구호활동 경험을 담은 책 ‘사람을 사람으로’(두앤북 펴냄)를 내놨다.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길이지만, 누군가는 꼭 가야 하는 길을 치열하게 걷고 있는 그는 “개발협력은 결국 사람을 귀히 여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될 수 없는 존엄성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세칭 명문대를 나와 안락한 길을 갈 수 있었던 그는 왜 아프리카로 갔을까.

연세대 재학 시절 현실과 실존에 대한 고민이 컸던 이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ROTC)를 제대한 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방황했다. 그는 20대 초반 사회구조를 바꾸고 싶었지만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을 보면서 절망했다. 그는 “고민이 깊어질수록 사회구조가 아니라 그보다 우위에 있는 인간의 본성, 이기심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고 이기심을 수용해 그에 따라 사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며 “당시 나의 고민은 온통 ‘어떻게 나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할 것인가’라는 의문의 답을 찾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중 성경을 접하고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기자를 준비하던 그에게 1994년 어느 날 한 신문에 나온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KFHI)의 기아봉사단 모집공고가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기구에 들어가 내전 중이던 르완다의 난민촌으로 파견되면서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그는 이후 케냐, 르완다, 우간다 등을 10여 년간 넘나들다 2000년 미국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서 지역개발학을 공부했다. 단기적인 구호 활동가에서 장기적인 개발 전문가로 변신한 지점이다. 공부를 끝내고 2004년 당시 내전 중이던 우간다의 국가지부장으로 임명돼 5년간 일한 후 2010년부터 다시 르완다로 돌아와 현재까지 르완다에 있다.

아프리카라는 곳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 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기아대책기구의 첫 파견지였던 르완다 난민촌에서 선교활동 중이던 아내 이송희 씨를 처음 만나 2주일 만에 프러포즈하고 승낙받았다. 그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 동반자가 있다”고 말하곤 웃었다. 아프리카에서 딸 둘에 아들까지 삼남매를 낳아 기른 부부는 르완다로 돌아온 후 유치원, 초등학교, 게스트하우스 등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수도 키갈리에 있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200여 명의 학생이 있으며 아내가 주로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이 교수는 르완다 개신교대학(PIASS)에서 개발학과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가고자 하는 길이 언제나 열려 있음을 보았다. 누구도 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길을 나서지 않을 수는 없었다”는 그에게 아내는 두려움 없이 같은 길을 걷게 해준 ‘신이 준 선물’ 같은 존재다.

▲내년 초 개원 예정인 르완다 나누리병원 모습.
▲내년 초 개원 예정인 르완다 나누리병원 모습.
학교, 게스트하우스에 이어 이 교수가 현재 가장 매진하고 있는 일은 병원 설립이다. “르완다 인구가 1200만 명인데, 의사는 900명(외국인 의사 포함)에 불과합니다. 보건소도, 국립병원도 의료설비나 인력이 늘 부족합니다. 국립병원에 MRI 기계 등 비싼 의료기기가 몇 개 있지만 이를 판독할 의사도, 고장 시 수리할 기사도 없어 창고에서 잠자고 있기 일쑤입니다.”

병원은 후배인 의사 부부가 그의 사역지에 봉사차 다녀온 후 한국의 병원을 정리하고 르완다로 오면서 함께 짓게 됐다고 한다. 설립 비용 부담이 컸지만 한국의 여러 교회 등에서 도움을 받아 병원은 현재 건축 마무리 작업 중이며 내년 초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 병원을 개원해도 고민은 많다. 병원을 무료로 운영할 수는 없으니 1인당 GDP 700달러인 르완다에서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 부유층이나 권력층에 제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텐데 병원을 짓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딜레마에 빠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료환경이 열악한 르완다에 이런 고민으로 아예 병원을 짓지 않는 것보다는 짓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후배 의사 부부와 함께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디오피아에도 한국 교회가 설립한 병원이 있다. 이곳은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출입구를 두 곳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묘안을 짜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앞으로 병원 문을 열고 실제 운영을 하다 보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이 교수는 구호 및 선교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0월 모교로부터 ‘언더우드 선교상’을 받았다. 이 교수는 “언더우드 선교사도 한국에 와서 신학대학이 아닌 일반대학을 세웠고 의과대학을 통해 병원도 설립했다”며 “아직은 먼 이야기겠지만 르완다에 대학교도 지어볼 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는 그의 삶이 됐지만, 젊은 시절 그의 고민대로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을 바꾸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개발사업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사업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 상대의 빈곤감이나 결핍을 자극하는 ‘충격요법’을 쓰고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며 개발 전문가로서 고민을 털어놨다.

르완다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는 “당신들에게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가난이라며 당신들은 우리 르완다의 불행을 먹고 살아간다”고 말했다. 당시 이 교수는 큰 충격과 분노를 느꼈지만 그의 메시지가 가슴을 찌르듯 파고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대가 ‘당신들은 나를 이용해 자족감만 느끼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때 돕기로 한 쪽도 도움을 받기로 한 쪽도 다 망가지게 돼 있다”며 이는 매우 위험한 방법인 만큼 결국 그들 스스로 깨닫고 변하게 하는 게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20여 년을 아프리카에 살았지만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교수는 아프리카 구호활동 경험담을 모아 ‘사람을 사람으로’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이상훈 교수는 아프리카 구호활동 경험담을 모아 ‘사람을 사람으로’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있다. 그 자신 역시 이를 바꾸기까지 오래 걸렸음을 고백했다. “한때 나도 아프리카인들이 미래를 지향하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있는 데다 시간까지 제대로 지키지 않으니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며 “우리의 성공신화는 분명 자랑스러운 역사이지만 우리의 방식으로 그들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 시절 얄팍한 개발 논리와 일천한 경험으로 그들의 소중하고 유일한 인생을 휘저어 놓은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고 말했다. 결국 개발도 구호도 인간관계도 공동체 문화도 진정한 대화를 통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서 깊이 이해하고 협력할 때 온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인류는 조건 없이 대의를 위해 묵묵히 전진하는 사람들, 인류공영을 믿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돈과 명예만 좇는 사람들만 가득했다면 이미 세계는 공멸했을 것”이라며 “인류 사회를 위해 누군가의 지원이 이어져야 인류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아프리카에 살 생각인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병원을 이왕 시작했으니 궤도에 올려놔야겠지요. 그런데 이제는 한국보다 아프리카에 있는게 마음이 더 편합니다.” 그의 말대로 척박하고 소외된 그곳에서 “오랜 시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임이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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