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기도하는 나가사키

입력 2018-10-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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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前 지식경제부 차관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는 슬픈 도시이다. 16세기 후반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이곳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으로,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더불어 천주교의 중심 도시가 되었고, 한때는 열 곳 이상의 성당이 있던 도시였다. 막부(幕府) 시대에 접어들면서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슬픈 역사가 시작된 이곳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내는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많은 희생자를 낳으며 더욱 슬픈 도시가 되었다. ‘나가사키는 오늘도 비가 내렸다’라는 제목의 일본 노래는 그래서인지 더욱 애달프다.

나가사키에는 천주교 신자이면서 방사선과 의사로 원폭 투하 이후 온 몸을 던져 아픔을 같이하고 복구의 희망을 노래했던 나가이 다카시(永井隆, 1908~1951) 박사의 삶의 발자취가 있다. 그는 환자들을 위한 방사선 치료로 인하여 자신의 몸이 시한부 인생이 되고, 가장 사랑했던 부인이 원폭으로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공동체의 재생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가 병구를 이끌고 집필한 많은 작품은 전후 일본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나가사키는 ‘고함치는 히로시마’와 대비되는 ‘기도하는 나가사키’로 거듭날 수 있었다.

나가이 박사는 고통을 겪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견딜 수 없이 어려운 고통마저도 인간에게 내린 숙제라 생각하고 그것을 끌어안고 극복하는 그의 삶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가 있었다. 그는 서양 의학을 전공한 의사였다. 그는 젊은 시절 앓았던 중이염 때문에 청진기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방사선 의학과로 가게 됐고 여기에서 평생을 지냈다.

사진 필름이 부족하여 엑스레이 방사선을 사진 대신 육안으로 직접 보기까지 했던 그는 4년에 걸친 전쟁 군의관 생활을 포함한 20년 가까운 의사 생활에서 과도하게 방사선을 쐬었고 그로 인하여 불치의 백혈병에 걸렸다.

나가이 박사는 자연과학의 원리를 수용하고 그것을 깊숙이 탐구하는 자연과학자이면서 신의 섭리에 머리 숙이는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인류가 발견하고 탐구한 원자의 원리를 우주의 장엄한 역동성의 한 국면으로 파악하였다. 그것을 핵 무기화할 것인지, 방사선을 활용한 첨단 의학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전력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것인지는 모두가 인간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원자력의 경우 그 위험성이 엄청나며, 그 위험성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삶의 고통이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고통과 위험은 언제나 있었다. 우리가 참다운 인간, 곧 깊이가 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고통과 위험은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그는 생각했다.

나가이 박사는 고통을 같이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뛰어넘는 삶을 노래한다. 나가이 박사의 삶을 보면 과학자로서의 삶, 신앙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일본인으로서의 삶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자연과학 원리에 대한 믿음을 움켜쥐고 신앙인의 겸손함을 잃지 않았던 나가이 박사의 삶은 감성으로 충만한 것 같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냉정하리만치 차갑고도 집요하다. 그를 통해 또다시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생각해 본다.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경외와 존경이 그 일에 수반되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질하지 않으려면 용기뿐만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냉철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에너지 전환이 화두가 되고 있다. 에너지 문제의 본질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욕구를 자제함으로써 에너지 수요를 줄일 것인가에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자연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는 공급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보다 수요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의 문제가 우선되어야 한다. 석유, 가스, 석탄, 원자력 그리고 재생에너지 중에서 어느 것을 많이 사용할 것인지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에너지를 적게 써야 하는 불편함이라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마음이 바로 나가이 박사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건강한 사회는 더불어 같이 고통을 극복함으로써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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