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될성부른 열매, 꽃눈부터 다르다?

입력 2018-03-2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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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집안 어르신들께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씀을 종종 듣곤 했다. 어릴 적부터 어려운 책들을 술술 읽던 ○○네 둘째 아들은 학자로 대성했고, 어린 나이에도 부모님 말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고 따랐던 ○○네 셋째 아들은 지금도 효심이 남다르다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어르신들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철부지 시절엔 정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려나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두어 해 전 그 말뜻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장날 시장에 가서 콩알 심는 모판을 사다가, 동네 이장님 댁에서 얻은 서리태 콩을 심었다. 얼마 후 콩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는데 정말 떡잎부터 싱싱하게 올라오는 싹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볕을 쐬었는데 올라오는 싹의 모양이 각양각색인 것을 보며 참으로 신기해하던 기억이 있다.

한데 올봄엔 ‘될성부른 열매, 꽃눈부터 다르다’는 사실에 새삼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운 날이 많았건만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던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집 블루베리 가지엔 꽃눈이 촘촘하게 매달렸다. 지난해 뿌려 준 값비싼 액비(液肥) 덕분인지, 신초(新草)도 꽤나 풍성하게 올라왔다. 블루베리는 꽃눈 하나에서 여덟 내지 열 송이 꽃이 피고 꽃송이 송이가 열매가 되니, 꽃눈을 서너 개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따 주어야 한다. 그래야 여름에 튼실하고 풍미가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꽃눈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예전엔 잘 몰랐는데 품종에 따라 모양새도 천차만별이요 크기도 각양각색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밭의 대표적 만생종인 챈들러는 열매가 100원짜리 동전만 하게 열리는데 꽃눈 또한 다른 품종에 비해 크기도 하거니와 오동통하고 탱글탱글한 모양새가 일품이다. 반면 조생종에다 자그마한 열매가 달리는 블루 레이는 꽃눈 모양새도 길쭉하고 갸름하거니와 부피도 얄팍하다. 꽃눈 중에는 1, 2월에 벌써 봄이 온 줄 알고 일찍 나왔다가 얼어 죽은 것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식물 세계에서도 주제 파악 못하면(?) 낭패를 보는 셈이다.

겨우내 삐죽삐죽 올라온 가지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오래된 가지들은 과감하게 쳐내야 하건만, 마음이 어리석고 모자란 탓에 자꾸만 멈칫하며 망설이게 된다. 늙은 가지지만 꽃눈을 듬뿍 달고 있는 경우는 아까운 생각이 들어 자를까 말까 고민하게 되고, 모양새가 초라하고 기존 가지를 방해하는 신초는 깔끔하게 잘라내는 것이 현명하건만 역시 아까운 생각에 갈팡질팡하곤 한다. 30년 베테랑 농부들은 망설임 없이 잘도 자르건만….

그러다 문득 가지 쳐내고 꽃눈 따내며 큰 열매 얻고자 하는 마음이 그저 우리네 욕심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될성부른 떡잎도 될성부른 꽃잎도 우리들 보기에 실하고 우리들 먹기에 맛있는 열매를 달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지. 열매가 크든 작든 맛이 달든 시든 똑같은 자연의 선물일 텐데, 열매에도 등급을 매기는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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