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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리스트럭처 中]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산업역군에 반기드는 워라밸 세대

# 올해 30대에 들어선 김현우씨. 최근 그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서 소규모 스타트업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에겐 ’저녁이 있는 삶’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전 직장은 높은 연봉과 안정성이 매력적이긴 했지만 과도한 업무와 야근이 잦은 생활에 하루하루 지쳐만 갔다. 월급은 줄었지만 출퇴근 시간이 일정해 개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지금 직장이 더 만족스럽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 돈이나 지위보다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가치관이 변화한 데 따른 결과다.

워라밸 세대는 장시간·고강도 노동, 잦은 야근을 당연시하는 것은 그간 우리 사회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해온 잘못된 관행이라고 여긴다.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성실하게 일해야만 성공한다는 이데올로기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청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은 높이되, 이를 일과 병행함으로써 좀 더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로망을 찾는 이유다.

김영주 일생활균형재단 WLB 연구소장은 “과거에는 집단주의적으로 조직이 운영되고 그 속에서 자기희생을 통해 성과를 보상받았지만 지금은 경쟁주의적 구조 안에서 개인화가 일상화되다 보니 자기 자신이 우선순위에 놓이게 됐다”고 워라밸 세태가 확산된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조사에서도 이러한 트렌드는 감지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7000만여건의 소셜미디어(SNS) 빅데이터를 분석해 내놓은 ‘2030세대 라이프 스타일과 일자리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는 워라밸 흐름을 반영하듯 모두의 희망은 정시퇴근을 일컫는‘칼퇴(언급량 4624건)’였다. 직장생활 관련 핵심어는 ‘야근(언급량 1만1760건)’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나의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곤란함을 언급한 것으로 분석됐다. 2030세대는 복지나 혜택보다 칼퇴나 연차 등 주어진 권리를 쓸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더 원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LG그룹 계열 광고회사인 HS애드가 3일 SNS에 공개된 빅데이터 120억 건가량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워라밸’을 언급하는 SNS 게시물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직장 생활 연관어 상위권이 ‘업무, 스트레스, 능력, 동료’가 차지한 반면 최근엔 ‘소통, 퇴근, 주말, 휴가’ 등 업무 외 자신을 위한 시간 등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생산성 향상과 인재확보를 위해 선제적으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아가는 기업들에서는 이미 워라밸 문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을 실감하고 있다. 카카오는 3년 일하면 1개월을 쉬는 ‘안식휴가’와 2시간짜리 ‘반반차 휴가’, 연차등록제 등 차별화된 유연근무제도로 사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직원들의 사용률도 높은 편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회사가 경기도 판교에 있다 보니 출퇴근에 시간이 많이 필요해 평일 저녁엔 개인적인 저녁약속이나 취미생활을 하기 어려운데, 많은 직원들이 반반차 휴가제도를 활용해 일과 개인생활, 가정 모두에서 균형적인 삶을 유지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숙박 O2O(온·오프라인 연결) 서비스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월 화요일~금요일에는 오전 9시에서 6시, 월요일에는 점심시간 이후 오후 1시 출근하도록 하는 ‘주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생산성 향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문지형 위드이노베이션 커뮤니케이션 이사는 “절대적인 근로시간이 업무 생산성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과감히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면서 “사실상의 인건비 상승 부담은 있었지만 이 제도를 통해 정해진 시간 내에 밀도있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돼 생산성이 높아졌고 이직률도 크게 떨어져 재교육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재 확보가 절실한 기업들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근무환경 조성이 인력유입의 중요 여건이라 보고 앞다퉈 일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올해부터 근로시간을 단축해 주 35시간 근무제로 전환하고 롯데그룹이 자율좌석제와 강제소등을 시행하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열정페이 논란이 일 정도로 가혹한 근무환경으로 유명한 게임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자사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이달 중 유연근무제를 전사적으로 시범 운영한다. 주 40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되 출퇴근 시간은 유연하게 설정할 수 있는 유연 출퇴근제(선택적 근로 시간제)를 시범 운영하기로 한 데 이어 ‘탄력적 근로 시간제’ 도입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게임업계의 맏형인 넥슨도 이미 조직마다 업무 특성에 맞춰 오전 8시부터 10시 사이에 출근 시간을 정하는 방식의 유연 출퇴근제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워라밸 기업문화가 확산되는 것이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직 중소기업까지 확산되기에는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또 설령 제도가 도입됐더라도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까 눈치보기에 급급해 현실적으로 실행되기 어려운가 하면 다른 근로자에게 근무가 과중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여전하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워라밸의 범주와 대상을 미조직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포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시간이 나의 권리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시간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인의 선택이 뒤따라야 장시간 노동이 생산되는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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