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관객과의 상생적인 동반

입력 2017-08-0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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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15년 전에 희한한 창작 공연을 제작했었다. ‘칼라바쇼’라는 제목의 넌버벌 퍼포먼스였는데 그때도 그랬고 돌이켜 봐도 특정 장르로 한정하기 어려운 공연이었다. TV의 화면조정 시간에 나타나는 ‘컬러 바’가 생명력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해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놀고 객석마저 무대가 되는 공연이었다. 음악 실험을 즐기는 원일 음악감독과 일상 소품을 활용한 새로운 타악기들을 만들기도 하고 신문지 더미를 관객에게 나눠 줘 찢고 뭉치고 던지게 했다. 관객들은 신문지를 뭉쳐 서로에게 던지며 ‘신문지 싸움’을 했고, 에어비닐을 밟으며 눈길을 걷는 듯 즐거워했다. 공연장은 자유와 해방의 에너지로 뜨거웠다.

돌이켜 보면 15년 전 모호한 장르의 그 공연은 실험적인 시도였다. 당시 무모한 용기로 그 공연을 제작하며 관객들은 어떤 상황이든지 집단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됐다. 해외 공연 시장에서는 이미 대세인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re)이 최근 한국 공연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15년 전 그 정체불명의 공연을 굳이 규정하자면 이머시브 연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객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상황이든지 주체적으로 시도하고 몰입하고 창조한다. 단 공연 시장은 15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관객 중심이다.

신인류의 탄생은 끝이 없다. 얼마 전까지 ‘프로슈머(producer+consumer: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소비자)가 광고 시장과 기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더니 이제는 ‘크리슈머’(Creative+Consumer:제품을 재창조하는 생산적인 소비자)의 아이디어와 제품 활용 방식에 기업이 의존하는 추세다. 소비자는 더 이상 기업의 매뉴얼대로 제품을 사용하는 관리 대상이 아니고 기업에 제품의 새로운 활용성과 마케팅 기법을 알려주는 매출력의 파트너인 것이다.

한 식음업체는 ‘크리슈머’들이 자사 제품인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짜파구리’라는 신메뉴를 개발한 데 착안해 아예 신제품을 출시했다. 공짜 쿠폰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던 한 ‘크리슈머’가 창조한 스타벅스 ‘악마의 음료’는 메뉴에는 없지만 손님들이 찾으면 매장에서 제조해 준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서 창의적 소비자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제품의 질과 종류, 마케팅, 서비스, 유통 방식을 개선해 이익을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연 시장의 젊은 예술가들도 ‘크리슈머’의 존재력을 활용하고 있다. 시대감각을 꿰찬 젊은 예술가들은 관객을 단지 일방적 소비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창작을 완성시키는 창조적 동반자로 재인식한다. 1980년 미국에서 초연된 수사 추리극 ‘쉬어 매드니스’는 관객들이 배심원이 돼 범인을 지목하기에 따라 결말이 달라진다. 지난해 이 연극이 대학로에 상륙했을 때 관객들은 신선해했다. 적극적으로 연극에 개입하며 배심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지난해 말에는 관객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웹사이트에 접속해 공연을 보는 방법을 숙지하고 대학로 곳곳을 오가며 헤드폰을 끼고 배우들의 행위에 동참하는 이색적인 연극 ‘로드 씨어터 대학로’가 공연됐다. 관객들은 공연장을 벗어나 대학로 뒷골목과 주점 등에서 일상과 밀착된 연극을 새롭게 만난 것이다.

요즘 화제인 ‘씨어터 RPG 1.7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더 적극적으로 관객을 공연에 끌어들인다. 관객은 연극 스태프가 되어 공연장의 분장실과 연습실을 누비며 직접 공연을 만든다. 무대 뒤의 적나라한 공연 제작 과정에 참여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무너지고 관객이 창조자이면서 소비자로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이런 이머시브 연극은 앞으로 더 많이 시도될 것이다. 우리 공연 시장도 관객과의 상생적 동반에 대해 창조적 재인식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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