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15. 허난설헌(許蘭雪軒)

입력 2017-05-1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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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시비 불거진 조선 제일의 여성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이름이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이다. ‘난설헌’은 스스로 지은 호다. ‘초희’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의 지혜로운 아내 번희(樊姬)를 뜻하며 ‘경번’도 번희를 사모한다는 의미다. 아마도 번희처럼 남편을 지혜롭게 내조하라는 권고를 담았으나 난설헌은 다른 길을 걸어갔다.

대문장가 허엽(許曄)의 딸이자 허봉(許篈)·허균(許筠)과 남매 사이인 난설헌은 문예가 넘쳐나는 집안 분위기를 흡수하며 성장했다. 그 결과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지어 주변사람을 놀라게 했다. 또 집에 도교 서적이 많아 도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동생 허균의 회고에 따르면, 10대 중후반 무렵 한 살 아래의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했으나 부부 사이가 안 좋았고 시어머니 맘에도 들지 못해 마음고생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아이 둘마저도 일찍 저세상으로 갔다.

난설헌은 스물일곱에 죽었는데 기록을 보면 석연치 않다. “나이 스물일곱에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집안사람들에게 ‘금년이 바로 3과 9(3×9=27)의 수에 해당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고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 이 죽음을 두고 신비롭다고 보기도 하나 자살 가능성이 다분히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후에 난설헌의 작품은 유언에 따라 대다수 불태워졌다. 다행히 허균이 글들을 수집해 1608년에 ‘난설헌집’을 간행했는데 시 210수, 부(賦) 1편, 산문 2편, 1606년에 중국 명(明)의 주지번(朱之蕃)과 양유년(梁有年)이 쓴 서문이 담겨 있다. 그 후 이 시집은 몇 차례 더 간행되었고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간행되었다.

한편, 허균은 누나에 대해 “하늘 선녀의 재주를 지녔다”고 평가했으나 김성립에 대해서는 “나의 매부는 경전과 역사책을 읽으라면 제대로 입도 떼지 못하지만, 과거 시험 문장은 요점을 맞추어서 여러 번 높은 등수에 들었다”고 꼬집었다. 이 글은 오늘날까지 김성립이 난설헌에게 기우는 짝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결정적인 단서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동생이 내린 누나 부부에 대한 평가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성립은 5대째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명문가 출신으로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그가 근무한 홍문관(弘文館)은 문과 급제자 중 집안 좋고 글 솜씨가 뛰어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부서였다. 김성립은 선조 대에 동인·서인으로 정치권이 분열하자 그 폐해를 비판하는 모임에 참가하는 소신과 배포도 있었다.

현재까지 난설헌은 조선 제일의 여성 문인이라는 찬사와 함께 중국 시인들의 시를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려 있다. 그러므로 진지한 사료 비판에 근거해서 생애 및 작품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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