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남자의 갱년기?-내 남성호르몬이 말한다 “그런 건 없다.”

입력 2017-04-13 10:38 수정 2017-04-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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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와서 그런 거예요. 매사에 소심해지고….”

몇 주 전 빨강, 보라 꽃이 심긴 화분 두 개를 사고는 “난생 처음 꽃을 샀다. 키우고 싶어졌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이런 댓글이 붙었습니다. 그 댓글에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화분을 햇볕이 내리쬐는 곳으로 내놓으면서 답글을 고치고 싶어졌습니다. “남자가 나이 들어 꽃을 예뻐하고, 화려한 옷을 입으려 들고, 머리도 한번 볶아 보는 거, 즉 남자가 ‘갱년기(更年期)’를 맞는 게 호르몬 분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 꽃들이 예뻐서 샀을 뿐이며, 젊었을 때도 예쁜 꽃을 보았을 텐데 사지 않았던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이 붓글씨네, 색소폰이네 등등 취미생활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것처럼 꽃 키우기는 저의 뒤늦은 여가활동일 뿐인데, 여성호르몬 때문이라고만 한다면 ‘꽃이 지닌 여성성만을 강조한 단견(短見)’이라고 핏대를 세우겠습니다.

▲나의 두 가지 꽃. 보라색은 새로 피어나는 중이어서 처음만큼 예쁘지 않다.
▲나의 두 가지 꽃. 보라색은 새로 피어나는 중이어서 처음만큼 예쁘지 않다.

여자들은 나이 들면 좀 거칠어지지요. 며칠 전에 아내가 외출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차를 어디에 세워 놓았냐”고 묻길래, “당신이 마지막에 세운 거 아냐?”라고 대답했습니다. 잠시 후 아내는 전화로 저를 엄청 꾸짖었습니다. “운전석을 보니 당신이 주차한 거 맞네. 왜 나한테 덮어씌워 차 찾느라고 이렇게 헤매게 해? 안 그래도 늦었는데…!”라며 우렁차고, 날카롭게 한참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게 급하면 휙 떠나면 될 일이지, 저를 혼낸 후에야 시동을 걸겠다는 듯 큰 분노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나의 두 가지 꽃. 보라색은 새로 피어나는 중이어서 처음만큼 예쁘지 않다.
▲나의 두 가지 꽃. 보라색은 새로 피어나는 중이어서 처음만큼 예쁘지 않다.

주변의 선후배들을 보면 이따위 걸로 아내에게서 혼난 사람들이 봄날 들꽃처럼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엄청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자들이 거칠어진 걸 남성호르몬이 많아져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남편에게서 호통만 들어오다가 맞먹어도 될 만해지자, 억누른 걸 토해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늙은 남자들이 간혹 있는 아내들의 뻔뻔스러운, 즉 자기 잘못을 슬쩍 덮으려는 호통까지 너그럽게 받아주는 것도 이제는 아내 말도 좀 들어야겠다는 반성 때문이지, 여성호르몬이 많아져서 나약해진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종합하면, ‘호르몬 분비 변화가 노년의 남자와 여자가 자신의 성(性)을 배반하는 원인’이라는 이론이 의학, 심리학, 사회학 등등 모든 학문에서 공인된 지 오래됐다 하더라도 저는 동의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추리소설의 대가(大家) 애거사 크리스티는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가 유난했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시대에 자랐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서전에 “‘당시엔 아버지가 다 알아서 하실 거야’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고 썼습니다. 그 시대 영국 아내들은 자식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이 말로 가르쳤다는 거지요. 하지만 여자들은 또 남편들을 이런 말로 조종했다고 합니다. “당신 말이 맞다고 확신해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 성경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인기배우 톰 행크스가 제작한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라는 영화에서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이 말을 비틀어 “남자는 여자의 머리가 맞아. 하지만 목이 있어야 머리가 붙어 있지”라며 ‘남자는 여자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임을 결혼을 앞둔 처녀에게 가르칩니다.

이런 말을 곰곰 생각해 보니 영국의 빅토리아시대 남자들과 그리스의 나이 든 남자들도 여성호르몬이 나왔겠지만, 여자들에게서 호통 소리는 안 들은 것 같습니다. 제 속의 남성호르몬이 이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끝내라고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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