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확증편향-대화를 끝장내는 최종병기

입력 2017-03-3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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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대화나 논쟁 중 한 쪽이 “너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대화나 논쟁은 끝난다. “너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이야”라는 사람은 귀를 막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무슨 대화를 더 하겠는가. “너야말로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군”이라고 대꾸할 순 있겠지만, 허공에 던지는 무의미한 부메랑일 뿐이다. 대화를 끝내는 최악이자, 최종병기일 수도 있다.

영국 학자 피터 웨이슨이 1960년 처음 사용한 심리학 용어 ‘확증편향(確證偏向·Confirmation Bias)’이 탄핵정국을 거치고 대선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어느 때보다 우리나라 신문과 TV에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포털을 검색해 보시라. 작년 하반기 어느 무렵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대한민국 언론매체 어느 하나는 이 용어로 뉴스를 보도하거나, 해설 기사를 쓰고 있다. (오늘은 내 차지가 됐다!)

쫓겨난 전(前) 대통령이 “확증편향 때문에 탄핵 사유 13개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는 지적이나, “유력 대선주자 지지자들 -박사모, 문빠, 안빠 등등-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저속한 공방·비방은 확증편향이 원인”이라는 해설 기사들이 그 예이다. 미국 대선 때는 트럼프를 둘러 싼 ‘미국인들의 확증편향’, 김제동이 자기 군복무 시절 있었던 일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하면 ‘김제동의 확증편향’이 전문가, 기자, 인터넷 논객들 사이에서 점검되고 해부되었으니 이 최종병기에 의지해 논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전 지구적(地球的)이요, 지위고하, 직업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확증편향’은 쉽게 말하면, ‘아전인수(我田引水)’요, 더 쉽게 말하면 ‘내 눈에 안경’이다. ‘나 좋은 대로 해석하고, 나 좋은 대로 행동하기’이다. 인간의 본성이다. 누구도 못 벗어난다. 모르는 것을 어떻게 믿으며, 안 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확증편향은 권력자, 지식인, 전문가들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본 것과 아는 것이 많을수록, 즉 정보가 많을수록 안 본 것과 모르는 것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쫓겨난 전 대통령이 비판자들에게 “당신들은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개인의 확증편향은 개인 간의 불화를 부르거나 논쟁을 끝장내는 데 그치나, 집단적 확증편향은 사회에 깊은 단층을 만든다. 지금 우리나라의 확증편향은 그래서 문제이다. 태극기와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그 증거이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과거만 보고 현재와 미래는 외면하는 측은한 집단’이라며 태극기 측을 비난하고,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과거가 없었으면 너희가 생겨났겠냐?’며 촛불 측을 나무란다. 둘 다 자기 것만 주장하고 상대방 생각은 무시하고 있으니 집단적 확증편향이 맞다. 그게 깊어지고 오래되어 지금 둘 사이에는 저주와 원망만이 남은 것이다.

‘제 눈에 안경’이 이제는 ‘안으로만 굽는 팔’이 되어 다른 이들을 포용하지 않는다. 지식인, 전문가, 권력자들의 확증편향이 사회 전체, 저 아래, 저 멀리까지 번져 ‘내 편’, 아니면 ‘네 편’이 되기를 강요한다.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려면 객관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상대방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를 길러야 하고, 말하기보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자신의 신념만을 주장하기보다는 신념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 등등의 주문을 따라야 한다. ‘제 눈에 안경’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루머와 가짜 뉴스로 확증편향을 부채질해 이득을 챙기려는 무리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의 확증편향은? 나의 ‘제 눈에 안경’은? “확증편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가 나의 확증편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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