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스티븐 존슨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입력 2015-07-0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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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효과, 혁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이 정도로 진정되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균학이나 예방의학 분야의 기여에 감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문명의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런 혜택을 누리기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고 긴 시간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 세계가 광범위한 교역망으로 연결되기 시작할 때부터 인류는 전염병으로 고생해 왔다. 병균의 세계 여행은 1330년대 초부터 본격화되는데,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흑사병이다. 1330년대 초에 아시아를 떠난 이 병은 1340년대에 흑해와 지중해에 도달했으며, 1340년대 후반에는 유럽 내륙지역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까지 퍼져 간다. 이 때문에 페스트가 강타한 피렌체는 인구 11만명에서 4만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페스트가 정복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파스퇴르가 균을 발견했을 무렵이다.

이 책은 마치 스포츠 경기를 실황 중계하듯 현대인의 오늘이 있기까지 결정적 영향을 미친 6가지 혁신의 전개과정을 흥미진지하게 그리고 있다. 유리, 냉기, 소리, 청결, 시간 그리고 빛과 같은 혁신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루고 있다. 모든 혁신은 전혀 예기치 않은 효과를 낳는다. 특정 혁신이 일어나고 난 다음 다른 혁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결과 이른바 ‘벌새효과’가 발생한다. 여기서 벌새효과는 한 분야의 혁신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 속한 변화를 낳게 되어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파도가 일어남을 뜻한다. 정책이 낳는 혁신처럼 어떤 벌새효과는 예상할 수 있지만 또 어떤 벌새효과는 전혀 예상할 수 없다.

6가지 혁신 사례 중 유리를 살펴보자. 유리가 장식물을 넘어 첨단 테크놀로지의 재료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제국의 전성기였다. 당시 유리 제조인들이 투탕카멘의 풍뎅이처럼 자연 상태에서 형성된 유리보다 이산화규소 조각을 더 단단하고 맑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덕분이었다. 이렇게 해서 로마시대에 창유리가 처음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원래 혁신은 창유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1204년 콘스탄티노플 약탈 사건으로 소수의 유리 제조인이 동쪽으로 지중해를 건너와 베네치아에 정착하면서 현대 유리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1291년 화재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베네치아 정부는 무라노 섬에 유리 제조인들을 집단적으로 거주시킨다. 밀집된 지역에서 치열한 경쟁 과정을 거치면서 유리 제조공법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수정에 버금가는 투명도를 가진 ‘크리스탈로’라는 현대 유리가 탄생하게 된다.

이런 혁신은 빛의 굴절을 이용하는 새로운 혁신 제품을 낳게 되는데 이것이 안경이다. 12~13세기 수도원에서 필사본을 공부하던 수도사들은 굽은 유리덩어리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글을 읽게 된다. 이 유용한 혁신품의 가치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1440년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발명되면서 독서가 일반인의 삶에 퍼지면서부터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자신이 눈이 나쁜 원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안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인쇄기가 발명된 뒤에 일어난 현상이야말로 현대사에서 벌새효과의 생생한 사례다. 거대한 안경 시장이 형성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제품인 현미경이 탄생한다. 현미경은 또 다른 혁신인 망원경과 거울을 낳는다.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에게 자신의 얼굴을 비롯한 현실 세계를 또렷하게 비춰볼 수 있게 해 준 테크놀로지가 없었더라면, 예술과 철학과 정치에서 특별한 사상이 무수히 꽃피웠던 르네상스의 탄생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혁신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혁신이 우리 시대를 어떻게 바꿔놓을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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