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복고 열풍]‘90 앓이’낭만적 향수인가 과거의 안주인가

입력 2015-03-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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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건축학개론’ ‘응답하라1997’ 시작으로…‘무한도전-토토가’서 폭발문화세례 받은 90년대 학번 제작·소비 전면에…의미있는 트렌드 되려면 복제 아닌 재창조 필요

지난 2월 21일 서울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백투더 나인티스 빅쑈(BACK TO THE 90’s BIG SHOW)’와 4월 25일 열릴 예정인 ‘토토즐 슈퍼콘서트’를 비롯해 각종 공연에 그동안 활동이 뜸했거나 거의 하지 않았던 김현정, 소찬휘, 철이와 미애, 쿨, 룰라, 지누션. 양파 등이 모습을 드러냈거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빅스는 Ref의 ‘이별공식’을 리메이크 했고 팝페라 가수 임형주는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등이 수록된 음반을 발매했다. 10여년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이본은 MBC ‘나가수’에 고정 출연하고 터보의 김정남, 쿨의 김성수 등이 KBS ‘해피투게더’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1990년 관객과 만난 최진실·박중훈 주연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15년 만에 새롭게 리메이크됐고 한석규·전도연 주연의 ‘접속’(1997년 개봉) 등 90년대 영화들이 재상영되고 있다.

이처럼 1990년대 가수, 음악이 다시 부상하는 것을 비롯해 1990년대를 소재로 한 복고 신드롬이 대중문화를 강타하고 있다. 이정현, 김건모, 터보, SES, 이본 등 1990년대 스타들이 출연한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1월 3일 방송)가 90년대 복고 열풍을 더욱 뜨겁게 달궜지만 대중문화에서 90년대 복고의 진원지는 2012년 대중과 만난 영화 ‘건축한 개론’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다. 이후 90년대 음악과 연예인 등이 속속 호출되며 강력한 90년대 신드롬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왜 90년대 복고 신드롬일까. 무엇이 드라마, 영화, 음악, 예능, 공연 등 대중문화의 한복판에 90년대 복고를 경쟁력 있는 트렌드로 부상시켰을까. 우선 90년대 복고 열기 이유를 대중문화 제작과 소비의 주체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90년대에 10~20대를 보낸 사람들이 콘텐츠 제작의 중심에 선 것이 90년대 복고 붐의 한 원인이다. 대중문화 폭발기이자 다양한 문화상품이 쏟아져 나온 1990년대 문화 세례를 받으며 10~20대를 보낸 MBC ‘무한도전’ 김태호 PD(고려대 94학번), ‘응답하라 1997’의 신원호 PD(서울대 94학번)와 이우정 작가(숙명여대 94학번) 등 X세대들이 제작의 주역으로 전면에 나서면서 90년대 대중문화 복고 상품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또한 90년대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을 보내며 대중문화를 본격적으로 소비한 세대들이 중장년층에 편입되면서도 문화상품 소비를 왕성하게 해 90년대 복고 열기를 고조시키는 일등공신이 됐다. 2013년부터 40대 한국영화 관객 비율이 20대를 넘어서고 30대 관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뮤지컬, 콘서트 등 문화상품 소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층은 30~40대 X세대다. 서울대 김상훈 경영학과 교수는 “X세대는 중년층에 편입되면서도 문화 콘텐츠 소비에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문화 콘텐츠 핵심 소비자가 됐다”고 분석한다. 1990년대 대중문화의 특성과 문양도 90년대 복고 바람을 일으킨 하나의 원인이다. 1990년대는 대중문화가 질적·양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던 시기다. 1990년대 초반에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음악계의 혁명이 시작됐고 90년대 중반에는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아이돌 음악으로 음악계 패러다임이 변화했으며 연예기획사 중심의 음악 시스템이 새롭게 구축됐다. 여기에 홍대 인디음악이 가세하며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질적·양적 폭발기가 됐다. 1992년 ‘질투’로 열린 트렌디 드라마 시대와 같은 해 개봉된 영화 ‘결혼 이야기’ 등 시장과 관객의 니즈에 맞춘 기획영화의 등장은 1990년대 영상문화의 질적인 도약을 초래했다. 독창성과 완성도 높은 1990년대 대중문화는 200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형식과 내용 면에서 소비의 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MBC 김영희 PD는 “1990년대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은 분위기였고 대중문화의 춘추전국시대였다. 90년대 문화는 최근 문화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90년대 복고를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10~20대들도 많이 소비하고 있다.

경기의 장기침체, 고용 없는 성장, 심화되는 양극화, 실업자 급증 등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고달픈 삶 역시 90년대를 복고라는 형식으로 소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가 어려울수록, 그리고 미래가 막막할 때 과거의 추억과 향수에서 위안을 찾으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요즘 대중문화에 거세게 일고 있는 90년대 복고 열기는 경기 침체로 인한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위안을 받고자 하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급변하는 테크놀러지에 대한 반작용이 90년대 복고를 대중문화의 주요한 트렌드와 키워드로 부상시켰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아날로그적 특성을 드러내는 90년대 복고 대중문화가 인간 본연의 날것, 그리고 사람의 정 등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해 인기가 높다는 지적이다.

대중문화의 90년대 복고 바람은 대중문화의 소재와 지평을 확대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각 세대간의 공통분모를 확대해 세대간의 이해의 접점을 넓히는 기능도 하고 있다. 세대간의 취향과 기호가 단절되는 상황에서 신세대가 향유하는 대중문화와 기성세대가 소비하는 대중문화는 건널 수 없는 강처럼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 복고 코드를 활용한 대중문화는 신세대와 기성세대 상호간의 이해의 접점을 확장하는 문화통합과 세대소통이라는 큰 의미도 담보하고 있다. 물론 90년대 복고를 대중문화와 우리사회의 퇴행을 가져오는 문제 있는 문화 현상이라고 진단하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90년대 복고는 힘든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는 과거에 안주해 현실을 등한시하는 부정적인 현상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한다.

90년대 복고가 계속 발전하려면 인기에만 편승해 90년대만을 단순히 모사 혹은 복제하면 안 된다. 2015년의 현재적 의미를 부여해 재창조하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90년대 복고가 지속적으로 대중문화의 의미있는 트렌드로 대중과 만날 수 있다. 김성일 경희대 후마니스타칼리지 객원교수는 “현재 ‘90년대 앓이’ 역시 좋았던 과거에 대한 낭만적 향수를 넘어 한국 대중문화가 처한 현실을 성찰하고 발전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건실한 과거로의 여행이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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