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X ‘790조 기후금융’ 실적 산정 기준 논란…관리체계 적정성 관심

정부가 2035년까지 790조원 규모의 기후금융 공급을 추진하는 가운데 감사원이 5대 정책금융기관의 녹색금융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책금융기관들이 자체 기준으로 집계한 녹색금융 실적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적용하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대규모 정책자금 투입을 앞두고 녹색금융 실적의 신뢰성과 관리체계가 검증대에 올랐다.
1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최근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5대 정책금융기관에 녹색금융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각 기관은 정식 감사 공문을 접수하기 전 단계에서 관련 자료를 준비해 회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이 요구한 자료는 기관별 녹색금융 공급실적 분류 기준과 업무 운영체계 등이다. 각 기관이 어떤 사업을 녹색금융으로 인정하고 실적을 산정하는지, 관련 기준과 관리체계는 적정한지 등을 확인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번 점검의 핵심은 녹색금융 실적의 신뢰성이다. 앞서 국회에서는 정책금융기관들이 자체 기준으로 집계한 녹색금융 공급액과 정부의 공식 녹색분류체계를 적용한 실적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실이 금융위원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정책금융기관의 녹색금융 공급실적은 자체 기준으로 69조4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K-택소노미를 적용하면 32조1000억원으로 줄어든다. 산정 기준에 따라 실적이 37조3000억원, 53.7% 감소하는 셈이다.
녹색금융의 인정 기준이 기관마다 다르면 실제 친환경 사업에 투입된 자금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환경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사업까지 녹색금융 실적에 포함될 경우 이른바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권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9월 열린 기후금융 활성화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는 금융회사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따른 적합성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녹색금융 인정 기준의 적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그린워싱 우려도 논의됐다.
이번 자료 요청은 정부가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을 본격 추진하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는 7일 발표한 K-GX 전략에 5대 정책금융기관이 2035년까지 총 790조원의 기후금융을 공급하는 계획을 담았다.
기후금융은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사업을 지원하는 녹색금융과 철강·석유화학·정유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돕는 전환금융을 포괄한다. 기존 녹색금융 실적과 정부의 790조원 기후금융 공급계획은 포괄 범위가 다르지만 대규모 정책금융이 투입되는 만큼 자금의 분류·산정 기준과 사후관리 체계를 명확히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감사원은 이미 녹색금융을 주요 감사 대상으로 선정한 상태다. 지난 7월 발표한 하반기 감사계획에서 '녹색금융 활성화 추진'을 성과·특정사안감사 분야의 주요 감사사항에 포함했다. 8월에는 기후위기 대응 관련 감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후환경감사국을 신설했다.
감사원이 자료 수집과 예비조사를 거쳐 정식 실지감사에 나설지도 관심이다. 정식 감사로 이어질 경우 정책금융기관별 녹색금융 실적 산정 기준과 운영체계 전반이 점검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감사원 관계자는 "진행 중인 개별 감사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