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모니터가 꺼지고⋯

입력 2026-09-16 06: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진료실의 일상은 짧은 메시지 하나로 멈췄다. ‘서버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마우스를 고쳐 쥐고 F5 키를 몇 번이고 연달아 눌렀지만, 모니터는 침묵했다. 불과 수초 전까지 검사 수치와 처방 이력을 빼곡히 보여주던 화면이 한순간에 깜깜한 광물성 먹통으로 변해버렸다.

진료실 안팎으로 순식간에 조급함과 답답함이 밀려들었다. 점심시간을 아껴 서둘러 찾아온 직장인은 연신 손목시계를 노려보며 발을 굴렀고, 수십 년째 오는 노인 환자의 얼굴엔 짙은 답답함이 가득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요?” “늘 먹던 약인데, 그냥 처방해 주면 안 되나?”

날 선 목소리들. 접수도, 과거 기록 조회도, 프린터의 처방전 출력도 멈춰버린 상태에서 당장 내놓을 수 있는 시원한 대안은 없었다.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원내 전산 서버가 멈춰 복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대기 시간이 많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안내 음성에 웅성거리던 대기실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기약 없는 기다림보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은 없다. 직원들은 당장 복귀해야 하는 직장인이나 약에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 우선 예약 변경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진료실 안, 모니터 빛이 꺼진 자리, 화면이 보여주던 데이터 대신 환자의 눈을 쳐다보며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 불편하신 데가 있나요? 약은 잘 드셨고요?” “에구, 선생님도 답답하시겠네요. 기계도 쉬어야지 별수 있나요. 사실은 요즘 밤에 잠이 좀 안 와서···.”

데이터 상자 뒤에 숨어 있던 환자의 진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니터의 빛이 사라지자, 도리어 환자의 작은 한숨 소리와 손끝의 떨림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삐-” 십 분이 흘렀을까. 모니터에 숫자와 기호가 무심하게 떴다. 진료실 안팎으로 나지막한 안도의 숨이 흘렀다. 시선은 다시 데이터로 모였다. 하지만 화면이 꺼졌던 공백은 숫자와 기호가 채울 수 없는 깊은 잔상을 남겼다. 최첨단 시스템이 멈춰선 순간에도 진료를 이어가게 한 것은, 결국 사람의 목소리와 눈빛이었다는 기억과 함께. 유형준 씨엠병원 내분비내과장/시인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이투데이 ‘2027 테크 퀘스트’ 10월 개최⋯대한민국 AI의 미래를 묻다
  • AI 개발 늦춰도 사용은 늘어난다⋯HBM 넘어 서버 D램·낸드로 번지는 수요 [AI 속도조절론]
  • 연휴 앞두고…제주가 왜 이러나 [이슈크래커]
  • 유가 100달러에 우회로까지 막혔다…커지는 항공·물류 ‘비용 청구서’
  • 추석에 73만원 쓴다…10명 중 6명 "지출 매우 부담" [데이터클립]
  • 아시아나 마일리지 10년 유지…대한항공 ‘마일리지 항공권’ 확 푼다
  • 美 국채금리 급등에 주담대 8% 턱밑… 변동금리도 ‘시간차 충격’
  • 김승원 후보자 “의혹으로 심려끼쳐 송구…형사법 개혁 현장서 완성”
  • 오늘의 상승종목

  • 09.1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02,793,000
    • -3.02%
    • 이더리움
    • 3,256,000
    • -4.74%
    • 비트코인 캐시
    • 294,800
    • -2.64%
    • 리플
    • 1,752
    • -9.46%
    • 솔라나
    • 132,000
    • -4.9%
    • 에이다
    • 266
    • -6.34%
    • 트론
    • 453
    • -0.88%
    • 스텔라루멘
    • 240
    • -8.05%
    • 비트코인에스브이
    • 21,760
    • -6.61%
    • 체인링크
    • 14,820
    • -5.12%
    • 샌드박스
    • 45.41
    • -5.8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