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인공지능(AI) 시대 국가의 역할은 민간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여는 데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추진하는 '모두의 AI'를 단순한 무료 AI 보급사업이 아니라 공공 수요와 데이터를 활용해 민간 AI 시장을 여는 국가 전략으로 설명하며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 철학을 구체화한 것이다.
김 실장은 2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AI 시대, 국가는 시장을 조직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AI 산업에서 국가의 역할은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혼자 넘기 어려운 초기 문턱을 낮추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AI 산업을 정부가 직접 키우거나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성장할 수 있는 초기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먼저 김 실장 "AI 시장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지금 열린 것은 작은 시장"이라고 진단했다. 개인이 챗봇을 구독하는 시장은 이미 형성됐지만, 의료·교육·행정 등 AI가 실제 사회 시스템에 들어가는 거대한 시장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를 '잠긴 시장'이라고 표현하며 "병원은 규제가 풀리기를 기다리고, 규제 당국은 성공 사례를 기다리며, 기업은 확실한 수요가 보이기를 기다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별로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 모여 사회 전체로는 열려야 할 시장이 멈춰 서 버린다"며 "이 문은 시장이 스스로 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국가의 역할은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넘지 못하는 초기 문턱을 낮추는 데 있다는 것이 김 실장의 주장이다. 그는 "AI를 만들고 팔고 쓰는 일은 그대로 시장에 맡기되 국가는 흩어진 조건들을 엮어 잠긴 문을 여는 일만 맡는다"며 "AI 시대의 국가는 생산하는 국가도, 통제하는 국가도 아니다. 시장을 조직하는 국가"라고 규정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국식 국가 주도 모델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김 실장은 중국에 대해 "국가가 초기 시장을 강하게 조직해 문을 여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 방식은 문을 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소유와 통제로까지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갈 길은 그쪽이 아니다"라며 "국가가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혼자서는 넘지 못하는 문턱만 넘겨주고 물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그는 "조직하는 국가는 스스로에게 규율을 걸어야 한다"며 "새로운 참여에 늘 열려 있어야 하고, 성과를 놓고 겨루게 해야 하며, 시장이 스스로 돌기 시작하면 반드시 비켜서야 한다"고 했다. 특히 "국가는 경기장에서 가장 큰 선수가 아니라 경기장을 설계하는 심판이어야 한다"고 표현하며 정부의 역할을 시장 조성자로 한정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국민 모두 AI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인 '모두의 AI'를 언급했다. 모두의 AI는 오는 12월부터 국산 AI 모델 기반의 범용 챗봇을 무료로 제공하고, 2027년 하반기에는 복지·세금 등 공공 서비스를 대신 찾아주고 신청까지 지원하는 '1인 1 AI 에이전트'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김 실장은 "지금은 무료 챗봇이 사업의 얼굴이고 공공 에이전트가 그 뒤에 서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무게는 뒤로 옮겨 가야 한다"며 "무료 AI가 일상에 AI를 뿌리내려 토대를 쌓는 정책이라면, 공공 에이전트는 그 토대 위에서 시장을 여는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정부 지원이 끝난 뒤에도 이 시장이 스스로 굴러가느냐 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과제"라며 "공공 서비스에서 사례와 데이터와 신뢰가 쌓이면 AI가 더 나아지고, 나아진 AI가 시장을 넓히며, 넓어진 시장이 다시 데이터를 낳는다. 이 고리가 저절로 돌기 시작하면, 국가는 그제야 물러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AI 산업의 기반은 충분하지만 이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작업이 부족하다는 진단도 내놨다. 김 실장은 "이 시장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 것은 엮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그 어려움 때문에 국가가 필요하다"며 "한국에는 그 재료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와 AI 모델 개발 역량, 5000만 명의 국민, 시행된 AI 기본법 등을 꼽으며 "문제는 재료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지 않으면 목걸이가 되지 못한다"며 "AI 시대에 국가가 할 일은 구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구슬을 꿰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반도체와 AI 모델, 데이터, 수요, 규제 등 개별 경쟁력을 국가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실장은 AI를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경제안보의 문제로도 규정했다. 그는 "나라가 쓰는 지능의 기반을 통째로 남에게 맡겨 두면 공급이 끊기거나 값이 오르거나 상대의 정책이 바뀔 때 속수무책이 된다"며 독자 AI 모델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AI 접근권을 교육과 공공보건처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기본적 권리로 제시하며 "국민 누구도 그 문 앞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챙기는 일은 국가의 몫"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