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인구·지역경제 살리려면 대규모 제조시설 필요"

정부가 최근 영남권 피지컬 AI 제조업 거점으로 제시한 구미에서는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이미 국가산업단지와 제조 기반을 갖춘 구미에서 피지컬 AI 투자는 새로운 공장이나 기업을 유치하기보다 기존 생산시설을 고도화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와 고용, 부동산 시장까지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려면 AI 제조 거점을 발판으로 새로운 제조기업과 대규모 생산시설을 추가로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4일 찾은 구미 국가산업단지 곳곳에서는 이런 염원이 그대로 드러났다. 산업단지에서 만난 기업 관계자와 지역 주민들은 AI 제조 거점 지정 자체는 환영하면서도 “이제는 새로운 기업이 들어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메가프로젝트가 기존 제조업의 AI 전환과 생산성 향상을 이끄는 출발점이라면 반도체 팹과 같은 대규모 생산시설을 추가로 유치해 새로운 일자리와 협력업체를 끌어들여야 지역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구미를 영남권 피지컬 AI 제조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스마트폰 제조 혁신을 이끌 마더팩토리와 피지컬 AI·휴머노이드 로봇 양산라인, 그룹 내부용 AI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하는 19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이다. 기존 국가산업단지와 전자산업 기반을 활용해 제조 AI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LG그룹도 영남권에 9조4000억원을 투입해 AI 반도체 기판과 차세대 모델을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피지컬 AI 제조 거점만으로 지역 산업과 경제를 되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미시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구미에는 SK실트론과 원익QnC, 월덱스 등 반도체 소재·부품 기업은 많지만 메모리나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는 반도체 팹은 없다”며 “지금 있는 기업들도 대부분 완성품 업체에 납품하는 협력사인 만큼 산업 생태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완성품 기업 유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AI 데이터센터나 피지컬 AI 산업은 기존 제조업을 고도화하는 의미는 있지만 고용 창출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반도체 팹은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는 만큼 공장 건설 단계부터 인력이 유입되고 협력업체도 함께 들어온다. 결국 반도체 팹이 들어와야 지역 경제에도 활력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미가 새로운 대규모 제조시설 유치를 원하는 이유는 산업 경쟁력뿐 아니라 인구 감소와도 맞닿아 있다. 한때 전국에서 가장 젊은 산업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구미는 제조업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청년층 유출이 이어졌고 도시 활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구미의 19~39세 청년 인구 비중은 2020년 31.1%에서 2024년 27.6%로 3.5%포인트 감소했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층이 수도권과 인근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지역 경제의 활력도 함께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역에서는 20여 년 전처럼 대규모 공장 유치를 계기로 경기가 다시 활성화되길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한 시민은 “현재 LG디스플레이의 전신인 LCD 공장이 들어섰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외지 인구가 유입되면서 지역 상권과 부동산 시장에도 활기가 돌았다”며 “이번 메가프로젝트도 계획대로 추진돼 그때처럼 다시 지역에 활력이 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구미 부동산 시장에는 온기가 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국가산단 인근 도로변에는 미분양 아파트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고 공인중개업소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구미시가 첨단기업 유치를 추진 중인 제5국가산업단지(하이테크밸리) 주변에도 ‘1억원대 아파트’, ‘1200만원 현금지원’, ‘평당 600만원대’ 등 할인 분양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국가산단 인근 공인중개사 B씨는 “신규 기업 투자와 공장 착공 같은 가시적인 후속 사업이 나와야 부동산 시장도 움직일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지방 부동산 시장 자체가 침체된 상황이라 개발 계획만으로 투자 수요가 움직이는 시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KB부동산 자료를 보면 구미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22년 10월경 고점을 기록한 뒤 하락세를 탔고 최근 2년가량은 100 안팎에 머물러 있다. 올해 6월 넷째 주에는 100.4로 전주보다 0.1포인트 올랐고 7월 첫째 주에도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투자 계획이 곧바로 부동산 시장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신중론도 나온다. 구미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C씨는 “AI 거점 지정이나 투자 계획만으로 매수세가 움직이는 시장은 이미 아니다”며 “기업 투자와 공장 착공, 일자리 증가가 실제로 확인돼야 시장도 반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개발 계획보다 실제 사업 진행 여부를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고 덧붙였다.
구미시민 D씨는 “결국 기업이 들어오고 사람이 모여야 집값도 움직인다”며 “메가프로젝트가 반도체 팹 유치와 공장 착공으로 이어진다면 지역 부동산 시장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