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나눠먹기에 축제판 벌인 듯
새로운 먹거리 대비 교훈 잊지말길

수출이 크게 늘었다. 6월에는 사상 최초로 월 수출액이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수출이 1조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보인다. 반도체 덕분이다.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2배 급증해 처음으로 월 410억달러를 웃돌았다.
나라 곳간도 넉넉해졌다. 올해 초과 세수는 25조2000억원, 법인세만 14조8000억원이 더 들어온다고 한다. 역시 반도체 덕분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두 반도체 기업이 올해 낼 법인세만 120조원 이상이 전망된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반도체로 횡재를 한 느낌이 든다.
역사상 이런 횡재는 여러 번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은광(銀鑛)이 발견돼 큰 수익이 생겼다. 사람들은 10드라크마(약 150만~ 200만원)씩 그 돈을 나눠 갖자고 했다. 그런데 아테네의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가 홀로 민중 앞에 나아가 함선 200척을 건조하자고 제안했다. 이게 받아 들여져 아테네는 훗날 페르시아를 물리칠 수 있었다. 갑작스레 생긴 큰돈을 당장 나누어 먹기보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자고 호소하는 지도자와 여기에 흔쾌히 응하는 시민들이 있었기에 아테네는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들이 누리던 민주주의도 유지될 수 있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당시 패망했던 나가오카(長岡)번에 이웃 지번(支藩)에서 구휼미 100석을 보내왔다. 굶주린 사무라이들은 쌀을 달라며 번성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을 가로막은 이는 가로(家老·지금의 총리격) 고바야시 도라사부로였다. 그는 사무라이들을 설득해 구휼미를 팔아 학교를 세우도록 했다. 후일 이 학교에서는 일본 근대화를 이끈 걸출한 인재들이 여럿 배출됐다.
1986년에 북해 유전개발로 막대한 부를 얻은 노르웨이는 거센 복지확대 압력에 직면했다. 그러나 당시 총리였던 그로탈렘 부룬틀람 등 정치 지도자들은 분명한 대원칙을 세웠다. 원유 수익을 당장의 소비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자산으로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해 유전에서 들어온 돈은 국부펀드에 쌓아 놓고 매년 3% 한도로 재정에 지원하도록 했다. 그 결과 국부펀드는 오늘날 약 2조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연기금으로 성장했고 노르웨이 국민들은 1인당 국민소득(GDP·국내총생산 기준) 8만달러를 내다보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거꾸로 간 사례도 많다. 1959년 북해에서 천연가스를 발견한 네덜란드는 막대한 외화수입이 인플레로 이어졌다. 그러자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 대량 실업과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제가 추락했다. 네덜란드병으로 불린 횡재의 미몽에서 깨어나기까지 대략 20년을 고생했다.
2010년대 몽고도 구리가격 급등으로 급증한 세수를 현금 지급에 쏟아부었다. 결과는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었다.
극적인 사태는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났다. 우고 차베스 정부는 2000년 고유가 시기 막대한 석유수익을 나눠먹는 데 써버렸다.
여론은 환호했지만 유가가 하락하자 산업 기반이 붕괴되고 초인플레이션이 생겼다. 일본보다 부자였던 이 나라는 식량이 모자라 국민의 75%가 각자 평균 8.7kg의 체중 감소를 겪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반도체라는 복권에 당첨된 한국 경제는 지금 축제 판을 벌인 듯하다. 올해 1분기 명목 GDP는 전 분기보다 10.5% 늘었다. 50년 만의 최대 증가폭이다. 1인당 국민소득(GNI) 4만달러 달성 시점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조갑제 기자(현 ‘조갑제닷컴’ 대표)는 1982년 이란·이라크 전쟁 중 20만t 유조선 동해 2호를 타고 쿠웨이트를 떠나 울산항까지 한 달간의 장기취재를 했었다. 당시 동해 2호의 점심 식탁에는 싱가포르에서 조달한 오렌지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런데 한국인 보통 선원들의 식탁에는 오렌지가 빠져 있어 기관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필시 사관용 식사와 선원용 식사가 다를 것이라고 추측했다. 대답은 의외였다.
결론은 오렌지가 똑같이 제공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선원들은 그걸 먹지 않고 냉장고에 모아둔다. 그래서 울산에 내릴 때쯤 되면 이삼십 개 정도의 오렌지를 집에 가져다 줄 수 있다. 공부하는 자식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당장의 달콤한 유혹을 떨쳐내고 미래를 위해 쓴 셈이다. 이 오렌지를 보면 반도체 이익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정답이 나온다. 국가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의 먹거리로 제2, 제3의 반도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오렌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