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 귀가하던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잔혹 범죄로 알려졌던 ‘광주 여고생 살인사건’. 두 달이 지난 현재 그 모든 초점이 경찰로 향하고 있는데요. 장윤기의 범행 자체를 넘어 수사 과정에 쏟아진 의문들이죠.
핵심은 사라진 증거입니다. 장윤기의 차량에서 발견됐지만, 초동수사 당시 압수되지 않았던 케이블타이가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 아버지 집에서 발견됐는데요. 검찰은 이 케이블타이가 성범죄 목적의 범행 혐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 증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건은 5월 5일 새벽 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한 보행로에서 발생했는데요. 장윤기는 자정께 귀가 중이던 고교 2학년 여학생을 흉기로 살해하고, 피해자를 도우려던 남학생에게도 흉기를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광주경찰청은 5월 14일 장윤기의 이름과 얼굴, 생년월일 등 신상정보를 공개했고 장윤기를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죠.
초기 경찰 수사에서 사건은 ‘분풀이’ 성격의 범행으로 알려졌는데요. 경찰은 장윤기가 앞서 다른 여성에게 스토킹 신고를 당했고, 이 여성에게 앙심을 품었다가 범행 대상을 바꾼 것으로 봤죠. 당시 적용된 혐의도 일반 살인과 살인미수였는데요. 하지만 검찰 보완수사 이후 사건의 성격은 달라졌습니다.

광주지검은 지난달 2일 장윤기를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했습니다. 검찰은 장윤기가 피해자를 끌고 가 성폭행하려 했고, 피해자가 저항하자 살해한 것으로 판단한 건데요.
이 변화는 단순한 혐의명 변경이 아닙니다. 일반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인데요. 반면 강간 등 살인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법정형이죠.
그렇기에 초동수사에서 확보했어야 할 물증이 정말 중요한데요. 차량, 블랙박스, 휴대전화, 자취방 물품, 결박 도구로 의심되는 케이블타이는 장윤기의 범행 목적과 계획성을 밝히는 단서가 될 수 있었죠. 그런데 검찰 보완수사 과정에서 일부 물증이 제대로 압수되지 않았거나 송치 자료에 누락됐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습니다.

장윤기의 차 안 케이블타이는 사건 다음 날인 5월 6일 낮 12시 45분께 SUV 조수석 수납공간에서 확인됐지만, 경찰은 이를 증거물로 압수하지 않았는데요. 이후 장윤기 아버지가 차량을 넘겨받은 뒤 케이블타이를 집으로 가져간 것으로 조사됐고 검찰은 7일 아버지 주거지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를 확보했죠.
케이블타이 자체는 생활용품일 수 있습니다. 장윤기 측도 전선 정리용이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죠. 하지만 검찰은 장윤기가 성폭행 목적으로 피해자를 미행해 납치하려 했다고 보고 있는데요. 범행 당시 차량 뒷문을 열어둔 채 접근했다는 정황까지 더해지면서, 차 안 케이블타이는 계획성을 가늠할 수 있는 물증으로 떠올랐습니다.
문제는 경찰이 이를 보고도 압수하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손수호 변호사는 9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여러 수사관이 현장에서 케이블타이를 인지한 정황이 있는 만큼 “몰랐던 게 아니라 알고도 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훼손된 성인용 인형 미압수, 장윤기 아버지에게 자취방 주소와 비밀번호가 전달된 점, DNA 보고서 송치 지연까지 고려하면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죠.
논란이 커진 이유는 장윤기 아버지의 직업 때문인데요. 장윤기의 아버지는 현직 경찰관이죠. 가족이 피의자를 감싸려 했다는 수준을 넘어, 경찰관인 가족이 수사 정보와 증거에 접근했고 수사팀이 이를 막지 못했거나 도왔다는 의혹으로 번진 겁니다.
장윤기 아버지가 수사팀으로부터 아들의 원룸 주소와 도어록 비밀번호를 전달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는데요. 3일과 4일 YTN과 JTBC에 따르면 장윤기 아버지는 범행 사흘 뒤인 5월 8일 아들의 원룸을 찾아가 성인용품과 휴대전화 등을 회수해 폐기했고 경찰은 해당 성인용품에서 DNA를 채취하고도 압수하지 않았습니다. DNA 감식 결과 보고서 역시 검찰에 제때 전달되지 않았죠.
이후 검찰은 장윤기 아버지와 수사팀 사이의 유착 가능성으로 수사를 넓혔습니다. 검찰은 장윤기 아버지의 휴대전화에서 통화 녹취를 확보했고, 이 가운데 수사팀원이 “당신이 경찰인 사실을 모르게 하라는 윗선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말한 내용이 확인됐는데요. 검찰은 경찰 윗선 개입과 조직적 은폐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사건 직후 지휘라인의 역할도 수사 대상에 올랐는데요. 8일 MBC에 따르면 장윤기 범행이 있었던 5월 5일 새벽, 광주 광산경찰서장 주재로 긴급회의가 열렸다는 수사팀장 진술도 확보됐죠.

장윤기 사건은 형법상 친족 특례 논란도 다시 불러왔습니다. 형법 제155조는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를 없애거나 숨기면 처벌하도록 하면서도, 친족이나 동거 가족이 피의자를 위해 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장윤기 아버지가 실제로 증거를 폐기했더라도, 아버지라는 친족 관계상 증거인멸죄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가족에게 가족의 범행 증거를 보존하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조항의 취지죠.
하지만 장윤기 아버지는 단순한 가족이 아니라 현직 경찰관입니다. 이에 수사 절차와 증거의 의미를 잘 아는 경찰관에게까지 같은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요.
정치권에서도 개정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거인멸죄와 범인은닉죄의 친족 특례를 삭제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죠.
현직 경찰관인 친족이 살인사건 증거인멸에 관여했다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2013년 전주 일가족 살해사건에서도 피의자의 외삼촌인 현직 경찰 황모 경사가 조카에게 차량 세차 등 증거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준 혐의로 입건됐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형사처벌이 아니라 징계였는데요. 검찰은 친족이 피의자를 위해 증거를 없앤 경우 처벌하지 않는 형법상 친족 특례를 적용했고 황 경사는 경찰 내부에서 감봉 1개월 처분을 받는 데 그쳤죠.

유족의 분노도 이 지점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고 이채원 양의 유족과 시민단체는 8일 광주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실·은폐 수사 의혹을 규탄했는데요. 범행의 계획성을 보여줄 수 있는 케이블타이가 압수되지 않은 채 피의자의 경찰 아버지 집에서 발견됐고 수사팀이 차량과 자취방 관련 정보를 장윤기 아버지에게 넘겼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유족의 분노는 경찰 수사로 향했습니다.
피해자 어머니가 기자회견에서 “믿었던 경찰이 살인마의 편이었다”는 취지로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인데요. 유족에게 이 사건은 장윤기의 범행뿐 아니라, 그 진실을 밝혀야 할 수사기관이 제 역할을 했는지를 묻는 문제로 번졌죠.
장윤기의 형사책임은 재판에서 판단될 문제입니다. 그러나 수사 과정을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경찰은 왜 케이블타이 등 주요 물증을 확보하지 않았는지, 피의자의 아버지는 어떤 경위로 그 물증에 접근했는지, 수사 정보가 부적절하게 전달된 정황은 없었는지 등이죠. 사건의 실체 규명과 함께 수사 절차에 대한 검증 요구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