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태움’…병원에도 손해배상 책임 물을 수 있을까 [수사와 재판]

입력 2026-07-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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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현장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온 ‘태움’이 다시 사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경기 광주에서 근무하던 한 간호사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간호사 조직 내 괴롭힘 문화와 병원의 관리책임, 그리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민·형사상 책임 범위를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동인)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20대 간호사는 입사 초기부터 선배 간호사들로부터 반복적인 질책과 모욕적 언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에게서 “신규(간호사들은) 자살 생각할 때까지 태울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고, 이후에도 공개적인 면박과 업무상 압박이 반복됐다고 한다. 피해자는 수간호사와 간호부서 책임자 등에게 고통을 호소했으나, 실질적인 보호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 사건에서 논란이 되는 쟁점은 선배 간호사의 행위가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업무 미숙에 대한 지적이더라도 그 내용이 인격을 훼손하는 발언, 공개적 모욕, 과도한 압박으로 이어졌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간호업무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 다루는 업무이므로, 신규 간호사에 대한 엄격한 교육과 피드백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그 방식이 모욕적이거나,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경우, 지위를 이용해 복종을 강요하는 형태라면 이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벗어난 행위로 볼 수 있다.

선배 간호사에게는 어떠한 형사책임이 문제 될 수 있을까? ‘태움’과 관련된 형사책임은 구체적 행위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반복적인 욕설이나 모욕적 표현이 공연히 이루어졌다면 모욕죄가, 허위 또는 사실 적시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했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

나아가 특정 행동을 강요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압해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했다면 강요죄 또는 협박죄가, 신체적 접촉이나 물리력 행사가 있었다면 폭행죄가 검토될 수 있다. 다만 ‘태움’ 자체가 독립된 범죄명은 아니므로 발언 내용, 행위 시점과 장소, 반복성, 피해 정도를 개별적으로 따져 구체적인 범죄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

다만 개별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와 사망 결과에 대한 형사책임이 인정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괴롭힘이 인정되더라도 곧바로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까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선배 간호사들에게 사망 결과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가해행위가 극단적 선택의 중대한 원인이 되었고, 그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피해자의 반복적 고통 호소 여부, 가해자나 병원 측의 인식, 괴롭힘의 강도와 지속기간이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반면 민사책임은 형사책임보다 넓게 인정될 수 있다. 형사책임이 범죄 성립과 엄격한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데 비해, 민사책임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발생과 상당인과관계를 중심으로 판단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선배 간호사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이 경우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가 인정될 수 있고, 괴롭힘과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유족의 손해배상청구도 문제 될 수 있다. 민사재판은 형사재판처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괴롭힘과 손해 사이의 관련성이 인정되면 배상책임이 손쉽게 성립할 수도 있다.

이러한 민사책임은 직접 괴롭힌 선배 간호사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병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피해자가 여러 차례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병원이 형식적인 조사에 그쳤거나,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 전보, 징계,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면 사용자 조치의무 위반이 문제 될 수 있다.

특히 사용자는 근로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는 만큼, 병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병원 역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고용노동부가 해당 병원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간호사 태움 사건에서 민사책임은 형사책임에 비해 좀 더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며 “특히 병원이 피해 호소를 알고도 실효적인 조사와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이는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움]

허윤 변호사는 법무법인 동인 금융팀, 수사대응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방위사업청 옴부즈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서울특별시의회 입법법률고문, 언론중재위원회 자문변호사, 기획재정부 사무처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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