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화폐 거래 주장했지만...객관적 증거 부족

보이스피싱 관련 채무부존재 소송에서 계좌명의인이 돈을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피해금 이동 경로까지 입증하는 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취지에 반한다고 봤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최누림 부장판사)는 최근 전자화폐 거래소를 운영했다고 주장하는 A 회사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약 6억원 규모의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A 회사의 청구 대부분을 기각했다.
이 사건 피고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2024년 8월 금융감독원 직원ㆍ검사 등을 사칭한 이들에게 속아 돈을 송금했다. 이 돈은 여러 계좌를 거쳐 A 회사 명의 계좌로 송금된 뒤 곧바로 다른 계좌로 출금됐다.
이후 피해자들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사기이용계좌의 지급정지를 요청하는 피해구제를 신청했고, A 회사 계좌 역시 지급 정지됐다.
A 회사는 ‘입금된 돈은 전자화폐 거래대금일 뿐 피해자들에게 반환할 채무는 없다’며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A 회사는 통상의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처럼 채권자인 피해자들이 자신에게 손해배상채권이나 부당이득반환채권이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통상적인 금전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의 주장과 증명책임 구조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수사 등 국가기관이 밝혀야 하는 범죄사실 및 피해금의 이동 경로를 피해자가 스스로 주장ㆍ증명해야 하는 것이 돼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이 전가될 뿐만 아니라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 측이 손해배상채권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사실상 증명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명의인 측의 신속한 채무부존재확인 청구가 쉽게 인용됨으로써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가 몰각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명의인 계좌에 입금된 금원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떠한 법률적 원인에 따라 입금된 것인지 여부를 증명하기 어렵다”며 “명의인은 자기 계좌에 입금된 금원이 누구로부터 입금된 것인지 특정할 수 있으므로 명의인에게 주장·증명 책임을 부담시키더라도 구체적 타당성의 관점에서 부당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원고 계좌로 입금된 피해금이 원고가 주장하는 ‘전자화폐 거래대금’으로 입금된 것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원고 청구 대부분을 기각했다. 또 A 회사 계좌에 입금된 돈 대부분이 30분 이내에 출금되는 거래 패턴 등도 함께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