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여행 새 지도 뜬다⋯‘애니메이션 성지 순례’ 인기

입력 2026-07-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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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속 실제 배경 찾아
관광지 넘어 팬덤 문화와 결합
日 매해 '애니 성지 88곳’ 선정

일본 여행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한때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은 도쿄와 교토, 오사카를 잇는 이른바 ‘골든 루트’에 집중됐다. 처음 일본을 찾는 여행객에게 이 코스는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지였다. 그러나 최근 일본 곳곳의 작은 도시와 낯선 골목, 지방 온천마을까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번지고 있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유명 관광지 안내서가 아니라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속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실제 현장은 많은 관광객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출처 스튜지오 지브리, 日도고온천 사이트 캡처)
▲애니메이션 속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실제 현장은 많은 관광객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출처 스튜지오 지브리, 日도고온천 사이트 캡처)

일본정부관광국(JNTO)은 최근 애니메이션 속 실제 배경지를 찾아가는 이른바 ‘애니메이션 성지 순례’가 외국인 관광객을 골든 루트 밖으로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속 주인공이 섰던 계단, 열차가 지나가던 건널목, 인물이 바라보던 바다와 숲을 찾아 일본 전역으로 향하고 있다. 화면 속 한 장면이 현실의 여행 목적지가 된 셈이다.

이 같은 여행 방식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열성 팬 문화와 결합해 확산하고 있다. 관광객은 작품 속 장면과 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고, 캐릭터와 관련된 기념품을 사고, 지역의 음식과 숙박을 함께 소비한다. 여행지는 더 이상 ‘유명해서 가는 곳’만이 아니다. 한 컷의 장면, 한 줄의 대사, 한 인물의 기억이 여행 동기가 된다.

JNTO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성지 순례의 가장 큰 효과는 지역 분산이다. 도쿄, 교토, 오사카에 집중되던 관광 수요가 지방 소도시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현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도 신주쿠에 있는 스가 신사 계단.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눈길을 끌었던 장면 가운데 하나다.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위키미디어커먼즈 사이트 캡처)
▲도쿄도 신주쿠에 있는 스가 신사 계단.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눈길을 끌었던 장면 가운데 하나다.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위키미디어커먼즈 사이트 캡처)

대표적인 장소도 다양하다. 도쿄 신주쿠의 스가신사 계단은 영화 ‘너의 이름은’ 속 유명 장면으로 잘 알려졌다. 도치기현 아시카가 플라워파크는 ‘귀멸의 칼날’을 떠올리게 하는 등나무 풍경으로 팬들을 끌어당긴다.

에히메현 도고온천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장소로 회자된다.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의 원시림은 ‘모노노케 히메’의 신비로운 숲을 떠올리게 한다.

구마모토현에는 ‘원피스’ 작가 오다 에이이치로를 기념하는 캐릭터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오이타현 히타시는 ‘진격의 거인’ 관련 명소와 캐릭터 조형물로 팬들을 맞는다. 아이치현 지브리파크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세계를 현실 공간으로 옮긴 대표적인 체험형 관광지다. 일본 전역에 흩어진 포켓몬 맨홀 ‘포케 뚜껑’도 지역을 잇는 작은 여행 동기가 되고 있다.

후쿠시마현 아시노마키 온천도 대표적인 성지 순례 코스다.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 나오는 무한의 성에 영감을 준 다층 구조의 로비를 자랑하는 료칸(전통 일본 여관)이다.

▲후쿠시마현 아시노마키 온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 나오는 무한의 성에 영감을 준 다층 구조의 로비를 자랑하는 료칸(전통 일본 여관)이다. (출처 스튜지오 지브리, 부킹닷컴 사이트 캡처)
▲후쿠시마현 아시노마키 온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 나오는 무한의 성에 영감을 준 다층 구조의 로비를 자랑하는 료칸(전통 일본 여관)이다. (출처 스튜지오 지브리, 부킹닷컴 사이트 캡처)

이 흐름의 배경에는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성장이 있다. JNTO는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으며, 젠지 세대의 문화 소비가 여행과 결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가려는 욕망이 새로운 관광 수요를 만들고 있다.

일본은 이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관광협회는 매년 ‘방문하고 싶은 일본 애니메이션 성지 88곳’을 선정한다. 숫자 88은 일본 시코쿠 순례길의 전통에서 따온 것으로, 팬덤 여행을 하나의 문화적 순례로 의미화한다.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대표적인 소프트파워이자 지역 관광의 안내자가 되고 있다.

관광산업 입장에서도 변화는 의미가 크다. 대도시에 몰리는 과잉관광 부담을 줄이고, 지방에는 새로운 소비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과 음식점, 교통, 기념품 산업은 물론 지역 브랜드 가치까지 함께 높아진다. 한때 스쳐 지나가던 작은 역과 골목이 이제는 해외 팬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목적지가 되고 있다.

결국 일본 여행의 새 지도는 지도책 위에서가 아니라 화면 속에서 먼저 태어나고 있다. 팬들이 애니메이션의 기억을 따라 이동하면서, 일본의 지방은 새로운 무대로 다시 발견되고 있다. 골든 루트의 시대가 저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옆에 또 하나의 길이 생겼다. 만화영화가 이끄는 순례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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