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의 분노가 아직도 쉽게 끊이지 않는 상황인데요.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25일(한국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1로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월드컵 역사상 단 한 번도 토너먼트 무대를 밟지 못했던 남아공에 졌다는 사실도 분명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팬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든 건 경기 내용이었습니다. 경기를 보는 내내 “도대체 어떻게 이기려고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공격다운 공격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골문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전반전 한국은 점유율 61%를 기록하며 공을 오래 소유했지만, 유효슈팅은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슈팅도 4개에 그쳤고, 결정적인 득점 기회 역시 한 차례도 없었죠.
반면 남아공은 점유율이 39%에 불과했지만 슈팅 10개를 시도했고, 기대득점(xG)도 0.97로 한국(0.34)을 크게 앞섰습니다. 이미 이때부터 경기의 흐름은 조금씩 남아공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한국의 점유율은 75%까지 치솟았고, 기대득점(xG)도 0.57로 남아공(0.19)을 앞질렀습니다. 코너킥도 4개를 얻어내며 공세를 한층 끌어올렸고, 결정적인 득점 기회도 한 차례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미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늦은 상황이었죠. 후반 18분 체팡 모레미(올랜도 파이리츠)의 패스를 받은 타펠로 마세코(AEL 리마솔)가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결국 결승골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가장 큰 의문은 ‘도대체 손흥민을 왜 벤치에 앉혔는가’입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부터 항상 선발로 뛰어왔던 손흥민의 제외가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홍 감독은 경기 후 “후반 남아공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졌을 때 손흥민을 투입해 승부를 보려 했다”고 설명했으나 쉽게 납득하긴 어려웠죠.
여기에 빠른 침투와 활동량이 강점인 2003년생 옌스 역시 벤치에서 출발했습니다. 옌스는 앞선 두 차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는데요. 후반 투입 직후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존재감을 보여준 만큼, 왜 선발이 아니었는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던 축구의 전설 박지성 JTBC 해설위원도 쓴소리를 남겼습니다. 그는 JTBC 중계에서 “지금 골이 필요한 상황인데 상대보다 4명이 뒤에 있는 건 골 넣을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많은 선수들이 공격에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경기 후에도 “1, 2, 3차전을 똑같이 축구했다. 수비에 중심을 두고 공격하겠다는 건데 공격에 가서 어떻게 공격할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직설했습니다.

월드컵을 오래 봐온 축구 팬들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바로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떠오른 건데요. 당시에도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은 홍명보 감독이 잡고 있었습니다. 손흥민을 비롯해 구자철(전 제주 유나이티드), 기성용(포항 스틸러스), 이청용(인천 유나이티드), 김영권(울산 현대) 등 유럽과 국내 무대에서 기량을 인정받던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조 편성도 나쁘지 않았는데요. 한국은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와 함께 H조에 묶였고 모두가 ‘상대적으로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었죠. 한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습니다. 러시아와 1-1로 비긴 뒤 알제리에 2-4로 패했고, 벨기에전에서도 0-1로 졌습니다. 특히 알제리전 4실점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월드컵 경기 중 하나로 꼽힙니다.
결과만 아쉬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표팀 역시 공격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고, 수비 조직도 계속 흔들렸습니다. 경기 흐름을 바꿀 만한 전술적 변화도 쉽게 보이지 않았죠. 이번 남아공전이 2014년의 실패와 겹쳐 보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홍 감독의 축구 스타일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였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고, 대표팀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선수 시절 그는 안정감, 리더십, 수비 조직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문제는 감독이 된 뒤에도 그 색깔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홍명보식 축구는 기본적으로 안정과 균형을 중시합니다. 무리하게 라인을 올리기보다 위험을 줄이고, 수비 조직을 먼저 세우려는 경향이 강하죠. 강팀을 상대로는 필요한 접근일 수는 있으나,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는 답답하게 보이기 쉽습니다.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32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수비적으로 버티기만 하면 되는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조 2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경기 주도권을 확실히 잡고 남아공을 밀어붙여야 했는데요.
한국은 끝내 남아공을 압도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남아공은 준비한 수비와 역습을 효과적으로 활용했고, 찾아온 딱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특히 이날 한국의 경기력은 유독 무거워 보였습니다. 선수들의 움직임은 전반적으로 둔했고, 서로의 호흡도 쉽게 맞지 않았습니다. 패스는 자주 끊겼고 판단도 평소보다 한 박자씩 늦었습니다. 경기 직후에는 “집단 식중독이라도 있었던 것 아니냐”, “선수단 내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이러한 우려에는 선을 그었습니다. 경기 다음 날인 26일 홍 감독은 대표팀 회복훈련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선수단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도 왜 이런 경기력이 나왔는지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선수들이 너무 잘하려는 마음, 반드시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정신적·심리적인 부담에 더운 날씨까지 겹치면서 평소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당혹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브라질 때는 지금보다 50배는 더 어려웠다”며 현재 대표팀 분위기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보다는 낫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감독 탓(?)을 하라고도 덧붙였는데요. 그는 “축구 선수뿐 아니라 누구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남 탓을 하게 된다”며 “(선수들에게도) 나를 탓하라고 했다. 김승규(FC도쿄)의 멕시코전 실수 역시 김승규를 탓하지 말고 그런 상황을 준비시키지 못한 감독인 나를 탓하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감독 탓(?)은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월드컵 역사에는 감독 한 명이 팀의 운명을 완전히 바꾼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입니다.
당시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서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팀이었습니다. 개최국이라는 이점은 있었지만 포르투갈, 미국, 폴란드와 같은 조에 편성되면서 16강 진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을 맡은 뒤 가장 먼저 선수들의 체질부터 바꿨습니다. 강도 높은 체력 훈련으로 활동량을 끌어올렸고, 기존 대표팀의 ‘고정 주전’ 개념도 과감하게 깨뜨렸습니다. 훈련과 경기력에 따라 출전 여부를 결정했고, 자연스럽게 팀 전체의 긴장감과 경기력도 함께 올라갔습니다.
전술 역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수비에만 머무르지 않고 강한 전방 압박과 빠른 공수 전환을 대표팀에 입혔습니다. 상대가 공을 잡으면 적극적으로 압박했고, 공을 탈취하면 빠르게 공격으로 연결하는 축구를 완성했습니다.
결국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월드컵 4강까지 끌어올렸습니다. 한국은 포르투갈을 꺾으며 월드컵 본선 첫 승을 거뒀고, 16강에서는 이탈리아, 8강에서는 스페인을 차례로 꺾으며 아시아 축구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남아공전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이 괴로워하는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잔디를 주먹으로 내리쳤고, 손흥민은 유니폼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승리를 원했던 선수들이었기에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순간이었죠.
희망적인 건 아직 월드컵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26일 E조, F조, D조 조별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 축구 통계업체 옵타는 한국의 32강 진출 확률을 54.45%로 전망했습니다. 가능성은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아직 반전의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12개 조 3위 팀 가운데 성적이 좋은 상위 8개 팀도 32강에 진출하는 방식입니다. 한국은 세 차례 진행한 조별리그에서 최종적으로 1승 2패(승점 3·득실차 -1)를 기록했습니다. 현재 조 3위 순위는 6위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제 남은 건 다른 조 결과를 지켜보는 일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에 기적이 찾아올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면, 이번에는 정말 이기기 위한 축구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