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안전·우회 항로·전쟁보험이 새 경쟁력 부상

중동전쟁 장기화로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100일째 이어지면서 국내 해운업계도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과거에는 운임과 선복량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 능력이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는 평가다.
4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HMM을 비롯한 글로벌 선사들은 전쟁 발발 이후 선박 안전 확보와 비상 항로 운영, 화주 대응 체계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한국 역시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어 해협 봉쇄 가능성만으로도 산업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실제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1일 기준 한국형 컨테이너 운임지수(KCCI)는 전주보다 197포인트(8%) 오른 2675를 기록했다.
전쟁 초기만 해도 해운업계의 관심은 운임 상승 여부에 쏠렸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선박 피격 위험과 항로 차질, 전쟁보험료 급등, 선원 안전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면서 리스크 관리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글로벌 선사들은 중동 인근 항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선박 운항 계획을 수시로 조정하고 있다. 일부 선박은 위험 해역 진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회 항로를 선택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운항 기간 증가와 연료비 부담도 감수하고 있다.
HMM 역시 중동 지역 상황을 실시간 점검하며 비상 대응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해운기업들이 단순 운송 사업자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안전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전쟁보험도 새로운 비용 부담으로 떠올랐다. 선박이 분쟁 지역을 통과할 경우 추가 보험료가 발생하는데 장기화될수록 선사와 화주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유가나 운임 변동성이 주요 변수였다면 이제는 지정학적 위험이 새로운 비용 항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해운업계는 이번 사태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위기 대응에도 중요한 경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지역에 의존한 항로 운영의 한계와 공급망 리스크의 파급력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전쟁은 해운업이 단순히 화물을 운반하는 산업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라는 점을 다시 보여줬다”며 “앞으로는 선복 경쟁보다 위기 대응 능력과 공급망 안정성이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위기 100일이 한국 해운업계에 남긴 가장 큰 교훈으로 ‘안전과 안정성’을 꼽는다. 비용 절감과 운항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삼던 시대에서 벗어나 공급망 회복력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춘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