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대조류' 크립토, 변동성 잦아들고 산업은 남는다

입력 2026-06-04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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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 행사장의 풍경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후드티와 청바지가 기본값이었다. 명함보다 텔레그램 아이디를 주고받는 일이 더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금융권 인사들이 행사장 곳곳에서 명함을 건넨다.

크립토가 변방의 실험에서 제도권 금융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한때 극심한 변동성과 투기성으로 대표되던 크립토 산업도 이전의 신기술 산업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간다.

닷컴버블이 그랬다. 당시 수많은 기업이 등장했고 막대한 자금이 몰렸다. 상당 수 기업이 사라졌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지금의 인터넷 산업을 이뤘다. 거품은 걷혔으나 기술과 산업은 남았고, 우리는 그 산업이 만든 인프라 위에서 살아간다.

크립토도 마찬가지다. 과열은 식고 변동성은 점차 잦아들 수 있다. 그러나 산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은 사업자와 기술은 새로운 금융 인프라의 일부가 된다. 결제, 송금, 투자 등 기존 금융이 담당해 온 영역과 맞물리며 또 다른 기반 산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 크립토 시장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동안 국내 시장은 이른바 '금가분리(금융과 가상자산 분리)'라는 그림자 규제에 묶여 있었다. 가상자산 투기 과열을 막기 위해 도입된 긴급조치성 규제 기조가 2017년 말 이후 약 9년간 금융권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을 사실상 제한해 왔다.

그러나 큰 흐름은 바뀌지 않고 계속 방향성을 갖고 움직였다. 제도권 자금이 들어오고, 임시방편으로 유지돼 온 규제 기조도 재검토될 가능성이 열렸다. 은행과 증권사는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투자와 인수 가능성을 검토하고, 금융당국도 금가분리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순리가 곧 방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투자자 피해와 불공정 행위, 사기성 프로젝트까지 용인할 수는 없다. 금가분리가 등장한 배경에도 투기 과열과 투자자 보호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동인도회사 설립 이후 400년 넘게 이어져 온 주식시장에서도 새로운 유형의 사기와 불공정거래는 계속 나타난다. 제도와 관행이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크립토 시장이라면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금가분리 완화에 따른 크립토의 제도권 편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가깝다. 그러나 그 흐름이 건강한 산업으로 이어지려면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촘촘한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변동성은 잦아들고 산업은 남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장을 막는 일이 아니라, 남을 산업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제도를 깁고 고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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