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사에서 노조가 일궈온 긍정적 궤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노조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로자의 기본권을 지켜내고 산업 현장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시대의 방패’였다. 노조가 끌어올린 실질 임금은 내수 시장을 키우는 마중물이 됐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감시하는 순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의 대기업들이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까지, 산업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린 노동자들의 헌신과 그들의 권익을 지탱해온 노사 협력의 역사는 우리 경제가 보유한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문제는 작금의 노조가 추구하는 가치가 ‘권익 보호’를 넘어 ‘특권의 공고화’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적 공분을 샀던 ‘알박기 투쟁’이나, 일부 대기업 노조의 ‘고용 세습’ 논란은 노조가 더 이상 약자가 아닌, 우리 사회의 견고한 기득권층이 됐음을 증명했다. 공정을 갈망하는 청년 세대의 눈에 비친 노조는 이제 권익 수호의 주체가 아닌, 자신들만의 성벽을 높이 쌓은 ‘신흥 귀족’에 가깝다.
1970년대 영국을 덮쳤던 ‘영국병(British Disease)’. 당시 막강한 정치적 세력을 가졌던 영국 노조는 기업의 경영 상태와 상관없이 고임금과 과도한 복지를 요구하며 파업을 일삼았다. 노조의 특권적 지위에 눌린 기업들은 투자 의욕을 잃었고, 국가 전체의 생산성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결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노조의 과욕이 국가 엔진을 꺼뜨린 비극적 기록이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가 걷고 있는 행보는 이런 우려를 심화시킨다. 7만5000명의 세를 확보한 노조는 단순한 처우 개선을 넘어 투자, 인수합병(M&A), 배당 정책까지 흔드는 ‘지배구조형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영업이익 15% 성과급’이라는 파격적 청구서를 내밀며, 하루 1조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총파업 배수진을 친 것은 국가 핵심 산업을 인질로 잡은 위험한 도박이다.
냉정하게 진단하자면, 지금 삼성은 노조와 성과급 잔치를 벌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 TSMC와 같은 빅테크 공룡들이 인공지능(AI) 패권을 놓고 사활을 건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을 잡기 위해 1분 1초를 다투는 골든타임에, 내부에서는 ‘특권적 과욕’을 앞세운 총성이 울리고 있는 격이다.
글로벌 복합 위기는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과 자국 우선주의 파고 속에서 삼성이 흔들리면 대한민국 수출의 38%가 무너지고 국내총생산(GDP)과 세수 체계에 치명적 공백이 생긴다. 노조의 파업은 단순히 한 기업의 조업 중단이 아니라, 국가 경제 엔진에 모래를 뿌리는 ‘자해 행위’와 다름없다.
더욱 뼈아픈 지점은 대기업 노조의 ‘그들만의 리그’가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이들이 성과급 치킨게임을 벌일 때, 그들을 지탱하는 수많은 협력사 근로자들은 상대적 박탈감 속에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인다. 상생이 실종된 특권적 쟁의는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없으며, 결국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와 국가 신인도를 동시에 갉아먹는 퍼펙트 스톰이 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영권을 정조준한 권력 투쟁이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상생의 거버넌스’다. 반도체는 대한민국 경제의 마지막 보루다. 이 보루가 노조의 과욕에 의해 무너진다면 그 책임은 역사가 준엄하게 물을 것이다. 특권을 버리고 상생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국가 대표 기업’ 노조가 보여줘야 할 진정한 용기이자 책무다. ac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