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박 26척·600여명 억류⋯해운 업계 월 174억 손실에 한숨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을 전제로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합의했지만 산업계는 안도하지 못하고 있다. 해협이 물리적으로 열려도 선박 적체와 전쟁 위험 보험료 고착으로 물류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서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리스크 해소가 아니라 ‘조건부 유예’로 보고 있다.
8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해협 개방이 곧바로 병목 해소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현재 카타르 인근에는 글로벌 해운사 선박 약 130척이 대기 중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기 선박 물량을 소화하는 데 최소 1~2개월이 필요하다”며 “입항 순서가 정해져 있어 순번이 뒤면 2주 내 출항이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선박은 해협이 열렸다고 바로 이동할 수 없다. 선석 확보와 선적·하역 작업이 선행돼야 출항이 가능하다. 항만 적체가 심한 상황에서는 평상시에도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데 전시 상황에는 안전 점검과 항로 통제까지 더해져 정상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한국해운협회에 따르면 한국 국적선박 26척과 선원 600여 명이 해당 해역에 억류돼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신규 운항은 일부 보조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기존 대기 선박이 먼저 빠져야 한다”며 “전체 물류 흐름이 빠르게 정상화되기는 어렵다”고 했다.
비용 부담도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전쟁 위험 보험료와 우회 운항 비용이 여전히 계약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재봉쇄 가능성이 남아 있는 만큼 선사와 화주 모두 장기 계약 대신 단기 조달과 스팟 계약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실제 전쟁 보험료는 최대 1100% 급등했고 저유황유 가격도 227% 상승했다. 선박 억류로 인한 손실은 하루 143만 달러(약 21억5000만 원), 월간 투입되는 비용은 약 174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항공업계 역시 체감 개선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국제유가가 하락해도 항공유는 달러로 거래돼 환율이 높으면 비용 절감 효과가 제한된다. 항공기 리스료, 정비비, 보험료 등 주요 비용도 달러로 결제되는 구조여서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안정돼야 본격적인 수익성 개선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항공권 가격도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류할증료는 전달 평균 항공유 가격(MOPS)을 기준으로 산정돼 즉각적인 유가 하락 효과가 반영되지 않는다. 이미 책정된 4~5월 할증료는 고유가 국면이 반영된 수준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의 최대 50% 수준에서 유가 헤지를 실행 중인 가운데 국제 유가 추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대응할 방침”이라며 “이달 유류할증료는 전달 기준으로 책정돼 단기간 내 변동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산업계가 더 긴장하는 이유는 중동 리스크가 더 이상 단순 유가 상승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번 사태를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넘어 나프타, 헬륨, 브롬, 암모니아 등 산업 원료와 소재로 충격이 확산되는 ‘공정 중단형 공급망 리스크’로 규정했다. 원유와 나프타, 헬륨은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단기간 내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는 ‘공정 유지 우선 관리’ 품목으로 분류됐다.
산업계는 이번 휴전을 ‘정상화’가 아닌 ‘잠시 열린 병목’으로 판단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2주 뒤 상황이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지금은 가격보다 물량을 먼저 확보해야 하는 국면”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