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땅’ 서리풀,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도약 [서울 복합개발 리포트 ⑨]

입력 2026-03-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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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업무지구 외연 확장… AI 탑재한 ‘미래형 오피스’ 예고
‘삼성·테헤란’과 양대 축 체제 기대...‘기존 상권 차별화’ 숙제도

▲16일 서울 서초구 서리풀 복합개발 사업지(옛 국군정보사령부 부지) 일대.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16일 서울 서초구 서리풀 복합개발 사업지(옛 국군정보사령부 부지) 일대.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 5번 출구 앞. 서리풀 터널 위쪽으로 펼쳐진 광활한 부지 위로 수십 대의 크레인과 타공기들이 연신 흙을 파헤치고 있다. 공사장 입구에는 레미콘 차량이 끊임없이 오가며 이곳이 강남권 개발의 중심지임을 보여준다.

과거 국군정보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어 ‘금단의 땅’으로 불렸던 서초구 서초동 1005-6번지 일대(9만6795㎡)가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재탄생한다. 40여 년간 강남의 동서를 단절시켰던 이 공간이 이제는 총사업비 5조원이 훌쩍 넘는 서리풀 복합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을 대표하는 첨단 업무·문화 거점으로 거듭나게 된다.

강남의 서쪽 경계 허물다… GBD 외연 확장

서리풀 복합개발사업은 민간 디벨로퍼 엠디엠플러스가 주도하고 신한은행, 이지스자산운용과 컨소시엄을 꾸려 추진하는 사업이다. 사업 시행은 에스비씨PFV가 맡고 시공은 포스코이앤씨가 담당한다. 한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5조3500억원 가량의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지난해 6월 말 확정됐고, 공사는 같은 해 7월 시작됐다. 준공은 2030년 목표다. 다만 착공 직후 포스코이앤씨의 전 현장 안전점검 여파로 일시 중단을 겪었다가 8월 재개 수순에 들어갔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올해 2월 기준 공정률은 약 3% 초반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 방식은 단순한 오피스 신축과 다르다. 서울시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이곳은 주거시설 없이 업무·판매·문화 기능을 결합한 복합단지로 조성된다. 서리풀터널을 기준으로 북측에는 지하 4층~지상 7층 규모의 글로벌 비즈니스 타운과 공공용지가, 남측에는 지하 7층~지상 19층, 4개 동 규모의 업무·근린생활·판매·문화시설이 들어서 오피스 총 5개 동이 조성된다. 전체 연면적은 약 60만65㎡ 규모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1005-6번지 일대 서리풀 복합개발사업지에서 공사가 한창인 모습. (정유정 기자 @oiljung)
▲서울 서초구 서초동 1005-6번지 일대 서리풀 복합개발사업지에서 공사가 한창인 모습. (정유정 기자 @oiljung)

서리풀 복합개발의 가장 큰 의미는 강남 권역(GBD)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 있다. 그동안 테헤란로 중심의 GBD는 서초역 인근 정보사 부지에 가로막혀 서쪽으로의 확장이 불가능했다. 2019년 서리풀 터널 개통으로 교통의 물꼬가 트였다면 이번 복합개발은 공간적·심리적 단절을 완전히 해소하는 화룡점정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개발에 따라 동쪽(삼성·테헤란)과 더불어 서리풀 지구가 GBD 양대 중심축으로 위상이 공고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초동에서 15년째 거주 중이라는 50대 주민 김 모 씨는 “서리풀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 정보사 부지 때문에 밤이면 인적이 드물어 섬처럼 고립된 느낌이 강했다”며 “이제는 단순히 길만 연결되는 게 아니라 대규모 업무시설과 문화시설이 들어온다니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뀔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숲을 끼고 개발되는 만큼 주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랜드마크가 생기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서초동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서리풀 복합개발은 단순히 오피스 몇 개 동이 들어오는 수준이 아닌 GBD의 무게중심을 서초 쪽으로 당겨오는 대형 이벤트”라며 “인근 노후 주택가나 소규모 빌딩에 대한 투자 문의도 이어지고 있고, 개발 완료 후 유입될 고소득 직장인 수요를 겨냥한 배후 주거지 가치도 동반 상승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리풀 복합개발 부지 바로 옆에는 방배동 등 배후 주거지가 풍부하다. 가격도 상승세다. 서리풀터널 인근에 위치한 ‘방배롯데캐슬로제’ 단지는 전용면적 172㎡가 1월 43억8000만원에 거래돼 직전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해 3월 같은 면적이 37억원에 거래된 것을 고려하면 10개월 만에 약 6억원이 오른 셈이다.

이번 개발이 단순한 빌딩 숲 조성에 그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강력한 ‘문화 거점’ 기능에 있다. 서리풀 복합단지는 공공기여를 통해 지역의 문화적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설계를 도입했다.

서초구가 운영할 예정인 복합공연장 ‘서리풀 사운드’는 760석 규모의 대공연장을 포함해 중·소공연장 4개로 구성돼 강남권의 부족한 공연 인프라를 채울 예정이다. 여기에 서울시가 추진하는 국내 최초 개방형 미술관인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가 더해진다. 이는 박물관의 보관 시설을 대중에 공개하는 혁신적인 형태로, 업무 지구에 문화적 감수성을 입혀 직장인뿐만 아니라 외부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조감도 (서울시)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조감도 (서울시)

과공급 우려?...“IT 인프라 갖춘 미래형 오피스는 다르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오피스 공급에 따른 공실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서리풀이 제시하는 ‘질적 차별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리풀 복합개발은 무인셔틀 등 첨단 이동기술 도입이 검토되는 미래형 오피스 단지가 될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김규진 젠스타메이트 리서치센터장은 “서리풀 복합개발은 국내 업무 환경이 질적 성장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프로젝트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곳은 첨단 모빌리티 인프라를 기본 탑재해 건물의 경쟁력을 갖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동구 '팩토리얼 성수'가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성공했듯 서리풀 또한 혁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유수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성동구 소재 로봇친화형 빌딩 ‘팩토리얼 성수’는 3.3㎡(평)당 4000만원으로 오피스 기준 성수동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첨단 기술이 집약된 미래형 오피스라는 가치를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복합시설이 들어서는 만큼 기존 강남의 핵심 상권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가 성패의 관건이다. 서리풀 부지는 강남역, 교대역 등 기존 번화가와 매우 가깝다. 이 때문에 자칫하면 기존 상권의 수요를 단순히 흡수하는 ‘제로섬 게임’이 되거나, 특색 없는 구성으로 기존 상권에 밀려날 위험도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서리풀만의 차별성 확보가 중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류강민 알스퀘어 리서치센터장은 “강남의 핵심 오피스 권역과 너무 가깝다는 점이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리테일이나 상업 시설을 구성할 때 기존 강남권과는 확연히 다른 차별성을 가져야만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상권이 잠식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IT 기업들의 강남·판교 선호는 매우 명확하다”며 “서리풀은 판교와도 가깝고 강남의 인프라를 그대로 누릴 수 있어 기업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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