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청 이전 예정지 미정...서울시 "순서 뒤바뀌어"
국토부 '법적 강제권' vs 서울시 '행정적 현실' 충돌

정부가 발표한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방안이 서울 시내 주요 자치구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애초 논란이 됐던 용산·태릉을 넘어 동대문구와 강남구까지 파열음이 확산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공공주택 특별법'이라는 법적 권한을 내세울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시와 자치구는 '인허가권'과 '주민 여론'을 방패 삼아 배수진을 치는 모양새라 실제 공급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1일 건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자치구들은 1·29 주택공급 대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대문구는 입장문을 통해 "발표 이틀 전에야 구청 의견을 묻는 방식의 형식적인 절차만 진행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지역 여건과 주민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서울시-자치구 간 긴밀한 협의 구조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강남구청 부지가 포함된 것에 대해 절차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남구청 이전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택 공급을 논의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강남구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현재 청사 재건축안 등 여러 방안 중 세텍(SETEC) 부지 이전을 1안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대책 발표 이전부터 반발 기류가 흐르던 곳은 분위기가 더 격앙된 모습이다. 용산구는 입장문을 통해 "주택 공급 정책은 주거환경은 물론 교육여건, 교통체계, 기반시설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치구 및 주민과 어떠한 공식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며 "기본적인 행정 절차와 용산구민의 입장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구에 따르면 주민들 사이에서는 "글로벌 경제도시를 만든다면서 닭장처럼 아파트만 채우겠다는 것이냐"는 불만과 함께 '1만 호 공급 반대'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노원구는 공급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개발 방식과 속도에 대해서는 분명한 조건을 달았다. △유네스코 평가에 따른 태강릉 보호의 원칙 하에 고품격·저밀도 주거단지 조성 △개발 계획에 생태공원·문화복합시설 조성 포함 △획기적인 교통정책(지하철 6호선 연장, 백사터널 건설, 화랑로 및 태릉~구리IC 확장 등) 수립 등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부의 '법적 강제권'과 지자체가 마주한 '행정적 현실' 간의 정면충돌이다. 정부는 태릉CC, 용산정비창 등 이번 대책의 주요 부지 대부분에 대해 지난해 말 발의된 '노후 공공청사 등 복합개발 특별법'을 전면 적용해 공급 속도전에 나설 방침이다. 이 법안은 노후 청사뿐만 아니라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보유한 모든 '유휴 국·공유지'를 개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서울 시내 핵심 요지 대부분이 국토부의 직접 통제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최대 격전지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개발법이 적용되는 용산국제업무지구 등은 서울시장이 승인권과 구역 결정권을 쥐고 있어 시와의 협의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코레일(지분 72%) 등 공공기관이 소유한 부지라는 점을 들어 '특별법' 우선 적용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이 통과되면 국토부 장관이 직접 복합개발지구를 지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지자체의 인허가권까지 의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지자체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30일 협의 간주제' 역시 폭발력이 큰 갈등 요소다. 특별법 제11조 2항에 따르면 국토부 장관이 지자체와 협의를 시작한 지 30일이 지나면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다음 절차로 넘어갈 수 있다. 사실상 지자체의 의견 수렴 과정을 '형식적 요식행위'가 될 수 있다.
현재 이 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로 본격적인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승부처는 여론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과거 8·4 대책 때도 국유지라는 명분만 믿고 발표했다가 자치구와 주민 반대로 무산된 사례가 있다"며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해도 지역 사회를 무시한 일방적 추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법령상 지자체의 권한이 축소되더라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지자체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