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車·원전·로봇이 증명한 ‘한국 제조의 몸값’이 밀었다 [오천피 시대]

입력 2026-01-2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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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원전과 조선·방산·로봇까지 확장된 한국 제조업의 가치가 증시를 밀어 올렸다. 인공지능(AI) 메모리와 미래차, 전력 인프라, 피지컬 AI로 이어지는 주력 산업군이 글로벌 경쟁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입증하면서 한국 증시는 오랜 ‘저평가 시장’ 프레임에서 벗어날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장세는 기대나 테마가 아니라 국가 제조 경쟁력이 숫자로 확인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000피’ 돌파의 주역인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의 시총 규모는 2000조 원을 웃돈다. 코스피 전체 시총 약 4100조 원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 자동차·로봇(현대차·기아), 이차전지(LG에너지솔루션), 원전·방산(한화에어로스페이스·HD현대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 투자·리밸런싱(SK스퀘어), 바이오(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은 국내 증시를 떠받치고 있다.

이번 상승장의 중심에는 반도체와 자동차가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주가가 약 30% 올랐고, SK하이닉스는 약 17% 상승했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확산이라는 구조적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데이터센터와 서버 투자를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첨단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공급자 우위 구조를 형성했고 이는 실적 가시성과 주가 상승으로 직결됐다. 삼성전자는 한국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분기 매출 90조 원, 영업이익 20조 원을 돌파했다. 단순한 경기 반등이 아니라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전략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른 대목이다.

자동차 산업 역시 지수 상승을 이끄는 또 다른 축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올해 들어 각각 80%, 40% 가까이 상승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시장에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는 로보틱스 전략으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전문 계열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전면에 내세우며 스스로를 ‘로보틱스·모빌리티 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산업용 로봇은 공장과 물류 현장에서 생산성 혁신을 이끌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넘어 실제 물리 공간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피지컬 AI’의 시대가 열리면서 제조 데이터와 공정 경험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원전의 가치 재평가 역시 이번 장세를 떠받친 또 다른 축이다.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전이 부상했다. 각국의 원전 확대 움직임 속에서 가격·납기·품질 경쟁력을 갖춘 K원전의 글로벌 경쟁력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원전 산업은 단순 기대를 넘어 원전 프로젝트의 실질적 진전이 가시화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변화의 중심에서 역할을 확대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방산 업종도 코스피 랠리를 이끈 또 다른 주역으로 꼽힌다. 조선업계는 고부가가치 선종 중심의 선별 수주 전략을 통해 수주잔고를 안정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를 계기로 미국 시장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방산 역시 대규모 수출 계약이 잇따르는 가운데 지정학적 긴장이 상존하는 국제 정세가 맞물리며 중장기 성장 기대가 이어지고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이 제조업 리레이팅이 어디까지 확산할 수 있느냐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상승은 기대가 아니라 검증의 결과이며 지수는 유동성이 아닌 산업이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한국 증시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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