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과 원화 가치는 물가, 금리, 채권 가격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환율이 내리면 원화 가치가 오르고 물가상승률은 낮아진다. 그 결과로 금리 인하 여력이 생긴다. 금리 인하는 채권 가격을 높인다. 채권은 국민연금의 핵심 투자처다. 일련의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수익을 본다. 이 수익은 미국 주식의 원화 평가액 하락에 따른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전제는 추세적 환율 안정이다. 국민연금의 외환시장 개입 효과가 작거나 단기에 그치면 전략적 환 헤지(달러 공급 확대)는 장기적인 환평가 이익을 차단한다. 외환 스와프(달러 수요 차단)는 한·미 금리차만큼 간접 비용을 만든다.
관건은 환율 소방수로 국민연금을 투입하는 게 얼마나 효과를 볼 것이냐다. 현재 고환율에는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 세계적으론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와 보호무역주의, 각국의 군사 분쟁으로 전 세계 돈이 달러로 몰리는 ‘킹 달러’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선 내수 부진과 가계부채 문제에 따른 통화정책의 경직성, 주식시장의 구조적 달러 유출 등이 문제다.
원인이 복잡한 탓에 환율 안정에 국민연금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연금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외국환평형기금과 외환보유액 활용, 통화정책 등 효과가 큰 정책수단 활용에 소극적이다. 외환보유액 감소, 금리 변동의 메시지 왜곡과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연금기금 투입 효과는 추가 환율 상승을 억제하는 수준이다. 물을 가둬놓은 둑이 무너지게 생겼는데 둑을 보강하는 게 아니라 둑 안의 물을 조금씩 퍼내는 것과 같다.
이런 비합리적 의사결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미래세대다. 우유부단한 관치(官治) 기금운용으로 환율 안정 효과도 못 보고 국민연금 수익이 줄면 국민연금기금 소진이 앞당겨진다. 그 결과로 청년세대와 미래세대의 부담이 는다. 그렇기에 ‘국민연금법’은 기금운용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최대 수익’을 제시한다. 외환시장 개입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건 ‘수익을 높인다’는 전제가 충족될 뿐이다. 지금과 같은 ‘애매한’ 외환시장 개입은 수익 극대화와 거리가 멀다.
이런 의사결정의 바탕에는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조성된 기금을 정부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최근 국민연금 공공임대주택 투자 논란도 바탕은 같다. 저렴한 임대료로 주택을 공급하면서 수익을 낼 방법은 없다. 이런 사업에는 국민연금이 아닌 재정을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쪽에선 국민연금의 공공임대주택 투자를 주기적으로 쟁점화한다. 수익률을 갉아먹는 사업일지라도 ‘청년 주거 안정’, ‘환율 안정’처럼 목적만 선하면 된다는 그릇된 생각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생각에 기인한 의사결정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관계부처 차관들이 참여한다. 구조부터 관치다. 가입자 대표 자격으로 참여하는 이해당사자들은 전문성 부족과 정보 비대칭으로 실질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렵다. 가입자에겐 행사할 수 없는 권리만 부여된 것이다.
안 그래도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세대의 불신이 강하다. ‘좋은 정책’의 조건 중 하나가 국민의 신뢰인데 정부가 나서서 그 신뢰를 더 깎아 먹겠다는 건 국민연금을 ‘나쁜 정책’으로 만들겠단 말이다. 최소한 수익 증대에 반하는 의사결정은 통제가 필요하다. 정부는 연금의 주인이 아닌 수탁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