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국내 14개 업체 비교해 정상가격 재산정
法 “비교대상 업체와 원고는 조건·상황 모두 달라”
‘1심 완패’ 국세청, 법원 판단에 불복해 항소 예정
법원이 유한킴벌리에 부과된 640억 원 규모의 과세 처분을 전부 취소했다. 국세청이 법인세를 매기기 위해 산정한 상품의 가격 등이 적법하게 산출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이정원 부장판사)는 16일 유한킴벌리가 잠실세무서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유한킴벌리는 미국 킴벌리클라크와 한국 유한양행이 1970년 공동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주 판매 상품은 기저귀·물티슈 등 유아아동용품, 화장지·키친타월 등 가정용품 등이다.
사건은 유한킴벌리가 해외 특수관계사와의 상품 거래에서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했다'는 국세청의 주장에서 시작됐다. 구 국제조세조정법은 '거래 당사자 어느 한 쪽이 국외특수관계인인 국제거래에서 가격이 정상가격보다 낮거나 높으면 과세당국이 정상가격을 기준으로 거주자의 과세 표준 및 세액을 결정하거나 경정할 수 있다'고 정한다.
유한킴벌리는 2015년~2019년까지 중국 등 45개 국외특수관계인, 일본·몽골·인도·호주 등 4개 비특수관계인에게 제조원가에 8% 이윤을 붙인 가격으로 수출 제품을 판매했다. 그러자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벌여 해당 기간 유한킴벌리가 적용한 가격이 정상가격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국세청은 국내 14개 업체를 비교대상 기업으로 선정한 뒤 정상가격을 재산정했고, 법인세 212억 원을 경정·고지했다. 유한킴벌리가 이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를 하자 정상가격 산정이 다시 이뤄졌다. 최종 부과된 법인세는 155억 원이었다.
또 다른 쟁점은 해외 파견 직원의 인건비를 '용역 제공'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유한킴벌리는 인력교류 프로그램 일환으로 소속 직원을 해외에 파견하고, 인건비는 국외특수관계인이 부담하도록 했다.
국세청은 유한킴벌리가 국외특수관계인에게 제품 등의 현지화 및 노하우를 이전하는 용역을 제공한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파견 직원의 인건비에 8%의 이윤을 가산한 금액을 정상가격으로 산정해 약 485억 원의 이전소득 금액을 통지했다. 이전소득은 생산에 직접 기여하지 않고 개인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받는 수입이다.
법원은 두 쟁점 모두 유한킴벌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우선 "국세청이 선정한 14개 비교대상 업체들의 거래는 조건과 상황이 유사하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적법하게 산출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이를 전제로 한 이 사건 각 처분은 모두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비교대상 업체들이 취급하는 상품과 유한킴벌리의 제품 종류가 본질적으로 다르고, 국외 판매로 환율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 등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거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합리적인 조정이 있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도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용역 제공에 대해서도 "파견 직원이 체결하는 계약은 국외특수관계사에서 약정한 직책을 수행하고 급여 및 각종 수당을 받는 고용계약이지만, 이 사건 용역거래는 국외특수관계인이 원고의 어느 직원을 통해 어떤 내용의 용역을 받을지 등 계약 목적, 당사자의 권리·의무, 대가 지급 방식 등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10년 이상 경력 직원이 국외특수관계인에게 파견돼 직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제품 개발 및 마케팅 등 노하우 이전의 용역제공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는 국외특수관계인에게 용역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경우엔 별도의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국세청은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