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등 이른바 '약자 보호법'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들 법안이 또 다른 약자인 영세 중소기업의 경영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한 의도와는 달리 '엄벌주의 정책'이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는, '규제의 역설'이다. 처벌과 제재 중심의 중처법에 사실상 형식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중소기업계에선 노란봉투법 등으로 인한 파업 리스크 확대로 경영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란 목소리가 거세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은 오는 21일 시작되는 8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2차 상법 개정안 등 법안 처리를 시도할 예정이다. 23일 노란봉투법, 24일 상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등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배상 청구 범위를 제한하고, 하청 노동자의 원청 교섭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차 상법 개정안은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수 주주의 권익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행 4년 차를 맞은 중처법의 경우 정치권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초고액 과징금을 부과하고 손해배상 한도를 재검토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보완해 입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계는 법안의 취지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이들 법안이 기업 경영을 옥죄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레미콘 회사를 운영하는 D기업 대표는 “(노란봉투법은) 법적으로 노조가 아니라고 본 사례가 있는데도 노조 명의로 파업하면, 손해배상 청구가 막힐 경우 기업은 대응 수단이 없다”며 “모든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못 하게 되면 파업 건수가 늘고 기업 입장에서는 대처를 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중처법과 관련해선 “사고 예방을 위해 여러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크다”며 “처벌이 강화돼 불가피하게 사고가 났을 경우 대표가 형사처벌이라도 받게 된다면 그 중소기업은 그냥 망하는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내놨다.
바이오 관련 제조업을 하는 E 기업 대표도 “결국 책임은 기업만 지는 구조”라며 “기업은 법이 정해지면 따를 수밖에 없다. 업계 차원에서도 사실상 맞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과 제도가 지나치게 근로자 중심으로 개정되고 있다. 기업 운영의 유연성은 떨어진다. 균형감 있는 법안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50인 미만 기업 466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처법 관련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7%는 ‘아직도 법 의무 준수를 완료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2023년 조사 때(94%)보다 낮아진 수치지만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중처법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처법 준수가 어려운 이유로는 ‘전문인력 부재’가 47%로 가장 많았다. 이 조사에서 기업인 86%가 ‘중처법 재유예가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정부는 중처법 보완을 통한 규제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며 기업의 목소리와는 사실상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재 사망사고 중 하청근로자가 40% 이상(2017~2022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처법이 우선 적용된 50인 이상과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기업의 사고사망자는 법 시행 전인 2021년 248명에서 2024년 25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2022년 시행 이후 3년이 지났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소기업에 중처법은 '(처벌)고강도·고비용·저효과'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중처법 대응이 여전히 어려운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이른바 페이퍼 세이프티가 성행하고 있다. 중처법의 처벌 대상이 대기업을 비켜가 중소기업에 집중되면서 압박감을 키우고 있지만 자금력·인력 등 현실적 문제들로 인해 형식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게 현주소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업 재해는 예측이 어려운 데다 법안 내용 자체도 불명확하고 이행성이 떨어지다보니 사실상 중소기업에선 안전이 '서류상'에만 존재한다"며 "규제에도 품질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중처법이 중소기업의 안전에 대한 인식을 오히려 저해시키고 있다고 직격했다.
중소기업계는 노란봉투법 개정안 역시 '파업 만능주의'로 노사관계를 크게 후퇴시키고, 현장 불확실성을 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날 중소기업계는 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을 만나 “2, 3차 협력사와 근로자 상당수는 노조법 개정으로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원청에서 파업이 생겨 공장가동률이 낮아지면 협력사 매출과 근로자 소득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전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추진되고 있는 법안들에 대한 대응 경험도, 여유도 없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정부가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무조건 따라오세요’라는 자세보다는 여러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중소기업의 리스크를 챙기고 케어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