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경영진 이탈, 경영공백에 그룹 쇄신 '난망'
작년 10월 SPC그룹이 영입한 신세계 출신 임병선 대표이사가 6개월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수년간 근로자 사망사고와 오너의 사법 리스크에 허덕였던 SPC그룹은 임 대표 영입으로 모처럼 경영 쇄신을 꾀했으나, 그의 돌연 사임으로 또 다시 허영인 회장의 리더십이 흔들리게 됐다는 우려가 업계 일각에선 나온다.
1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임병선 SPC 대표가 이달 초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와 퇴사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임 대표는 신세계 백화점부문 부사장, 신세계까사 대표이사,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부사장 등을 거쳤다. SPC는 임 대표의 후임을 별도 선임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당분간 '정통 SPC맨' 도세호 대표이사 단독대표 체제가 유지될 전망이다.
SPC그룹은 임 대표의 거취에 대해 "개인 신상 이슈로 (대표이사) 업무를 안 하고 계신 것은 맞다"면서도 "아직 회사에 적을 두고 계신 상태"라고 퇴사 여부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추후 (대표이사직) 복귀 여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본인 결정에 달렸다"고 부연했다.

작년 10월 신세계에서 SPC로 자리를 옮긴 임 대표는 그룹 내 인사ㆍ법무ㆍ대외협력ㆍ컴플라이언스ㆍ홍보 등을 총괄해왔다. 또 그룹 계열사 사장단 협의체인 ‘SPC WAY 커미티(committee)’ 의장 역할도 맡아왔다. '인사통'인 그가 각자대표에 선임되면서, SPC 안팎에선 쇄신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SPC그룹도 당시 임 대표 영입 이유에 대해 "조직문화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계열사 간 소통을 강화해 ‘글로벌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 실현에 앞장설 적임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조기 사임으로 경영 쇄신은 요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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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는 그동안 부문별 전문성 강화와 효율적 의사결정 차원에서 각자대표 체제를 꾸준히 유지해 왔다. 문제는 각자대표체제가 여러 이유로 계속 미완에 그쳤쳤다는 점이다. 2023년과 2024년 판사 출신 강선희 대표와 내부 승진한 황재복 대표가 SPC 각자대표로 임명됐지만, 강 대표가 돌연 가족의 총선 출마를 지원하겠다면서 작년 4월 자진 사임했다. 인사와 사업관리를 맡은 황 대표도 같은 해 3월 노조 이슈로 허 회장과 함께 구속돼 사실상 경영공백을 야기했었다.
임 대표의 조기 사임을 바라보는 SPC 안팎의 시선은 교차하고 있다. 법원의 보석 허가를 받고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선 허영인 SPC 회장의 의중이 그의 갑작스런 사임에 이유가 됐는지도 관심사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던 허 회장은 지난해 9월 보석 허가를 받아, 작년 말부터 의욕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임 대표를 비롯한 외부인재 영입 작업과 일본, 미국 등 해외 출장도 잇달아 소화해 왔다. 허 회장이 이처럼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외부 인사인 임 대표의 부담감도 그만큼 커졌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식품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오너 입김이 센 만큼 임원들도 임기를 길게 가져가면서 경영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경영진 이탈이 잦은 SPC의 경우, 실무 직원들의 업무에 차질을 빚을 뿐 아니라 허영인 회장의 경영 구상과 리더십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