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사기죄 성립요건
사람에게 착오 일으켜야”
대출금을 갚을 의사나 능력 없이 비대면 카드론 대출을 받았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카드론 대출이 비대면 전산 자동심사 방식으로 이뤄져 ‘사람’을 속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박모(64)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박 씨는 애초 대출금 반환 능력이 없는데도 휴대전화에 설치된 카드회사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두 차례 대출 상품으로 3450만 원을 대출받아 가로챘다. 그는 기존 채무만 3억 원에 육박하고 매달 상환해야 하는 대출 원리금이 월수입을 초과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박 씨는 같은 날 동시에 카드 대출을 받는 경우 대출 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여러 카드사에서 1억3000여만 원을 대출받고자 범행을 계획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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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과 2심 재판부는 박 씨에게 사기죄를 인정,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형법상 사기죄 성립 요건인 기망 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한다”면서 “따라서 사람에 대한 기망 행위를 수반하지 않으면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종전 대법원 판례 법리에 따른 태도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들의 앱을 이용해 자금 용도, 보유 자산, 연소득 정보 등을 입력한 데 따라 대출이 전산상 자동 처리돼 대출금이 송금됐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회사 직원이 대출 신청을 확인하거나 송금하는 등 개입했다고 인정할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피고인이 피해회사 직원 등 사람을 기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법원은 비대면 대출을 활용한 박 씨 행위가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은 사기죄에서 기망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원심 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