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이 20일 “이번 정부 추경(추가경정예산안)에는 산불과 통상 관련 내용이 들어가며 사실상 내수 진작 추경 규모는 삭감됐다”며 “추경 규모를 15조 원까지는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허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다. 정부가 곧 국회에 제출할 12조2000억 원 규모 추경안에 사이렌을 울린 셈이다. 민주당 이재명·김동연·김경수 대선 경선 후보도 앞서 18일 합동 방송 토론회에서 추경 확대를 언급했다.
추경은 한 해 본예산이 확정된 뒤 예상하지 못한 재정 지출이 필요할 때 편성되는 예산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부가 편성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써도 무방한 조자룡의 헌 칼은 아니다. 정부·정당의 쌈짓돈일 수도 없다. 국가재정법은 ‘전쟁 또는 대규모 재해 발생 시’ 등 조건을 명시한다. 추경 요건이다.
현실의 제약도 있다. 요건이 충족돼도 재정상 과잉 편성은 불가능하다는 제약이다. 그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재정 여건부터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이번 추경 재원 중 4조1000억 원은 세계잉여금·기금여유재원 등으로 마련된다. 마른 수건을 짜듯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론 턱없이 모자라 8조1000억 원은 적자성 국채를 발행해 충당한다. 그렇게 간신히 맞춘 것이 12조 원대 정부안이다.
정부안이 편성·집행되면 국가 총지출은 686조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4% 늘어난다. 각별히 신경 쓰이는 것은 적자성 채무가 날로 부푼다는 국가적 고민거리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번 추경으로 올해 적자성 채무는 885조4000억 원으로 불어난다. 지난해 대비 11.8% 증가다. 적자성 채무는 국민에게 장차 거둬들일 조세 등으로 상환한다. 대응 자산이 있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국민주택채권 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적자성 채무는 2015년 처음 300조 원을 넘은 뒤 코로나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늘어 900조 원을 바라보게 됐다. 국가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0%에 육박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부담스럽다. 이번 추경안대로라면 48.1%에서 48.4%로 증가한다. 50%가 눈앞이다. 기축통화국 아닌 소규모 개방경제로선 살얼음판 걷듯이 조심할 국면이다.
민주당이 추경 확대 명분으로 드는 ‘내수 진작’은 일리가 없지 않다. 다만 빚더미 문제를 고려하며 숫자놀음을 벌이는지는 의문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다. 언덕이 있나.
민주당이 진정 추경 확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해야 할 것은 근육 자랑이 아니다. 6월 초 조기 대통령선거까지 기다리는 것이 순리다. 먼저 정권을 잡아 편성권을 확보한 다음, 합법적 절차를 거쳐 민주당이 생각하는 최적 규모의 추경을 편성·집행하고 공과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러는 대신 지금 ‘지역화폐 예산을 반영하네, 마네’ 등의 때아닌 갈등을 빚으면 정략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정부 추경안 통과 예상일은 5월 초다. ‘+알파’ 추경을 6월 대선 이후 결정한다 해도 크게 늦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