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법이 뭐길래…정쟁에 등 터진 공직 사회 [공무원 수난시대②]

입력 2023-07-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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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3-07-24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대통령 1호 거부권으로 얼룩진 양곡법…"정책 공감대가 우선 아닌가요"

▲여야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아온 양곡관리법 개정안 투표에 대한 감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여야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아온 양곡관리법 개정안 투표에 대한 감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남는 쌀 전량 강제 매수법은 농업·농촌과 국가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사안이지만 입법과정에서 실질적인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습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올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권, 일면 거부권을 행사한 뒤 그간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해 야당은 쌀값이 폭락하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양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매년 9월경 생산량과 다음 해 수요량을 추정해 생산량이 수요를 3~5% 초과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모두 격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금도 쌀이 과잉 생산되면 정부가 이를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시키고 있지만 이를 법으로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양곡법 개정안 통과를 최우선 입법과제로 내세울 만큼 의욕을 보였고, 실제로 단독처리라는 강수를 뒀다. 이에 대해 야당인 국민의힘은 '공산화법', '날치기 통과'라고 비난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윤 대통령이 나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개정안은 폐기됐다.

양곡법은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민주당은 2019년 쌀 의무매입 법안을 발의했지만 문재인 정권 당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이 여당이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보다 강경한 의지로 법안을 밀어붙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야가 극한으로 대치하는 사이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부처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안 그래도 민감한 쌀값 문제가 불거지면서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어렵게 됐다. 공무원들은 정책의 실효성을 고민하는 대신 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현실을 설명하는 데 거의 1년의 시간을 보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근 농업이 새로운 산업 영역으로 급부상하고 있고, 푸드테크와 그린바이오, 반려동물 산업 등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야 하는데 양곡법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거기에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며 "농업은 항상 보호받고 지원해줘야 한다는 과거의 정책으로 회귀하는 느낌마져 들었다"고 토로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쌀값정상화법(양곡관리법)' 국회 재의 가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위)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양곡관리법 재의요구 후속대책 관련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쌀값정상화법(양곡관리법)' 국회 재의 가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위)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양곡관리법 재의요구 후속대책 관련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농식품부는 올해 제1차 청년농 육성 기본계획과 스마트농업·푸드테크·그린바이오 등 신산업 육성방안을 마련해 생산중심의 전통적 구조를 정보통신기술(ICT)·생명공학(BT)·로봇 등 첨단기술과 융복합된 미래산업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밀가루를 대체할 가루쌀 생산 확대를 꾀하면서 약 10년 만에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스마트농업과 빅데이터를 전담하는 '농업혁신정책신', 동물복지 강화를 위한 국장급 전담 조직을 만드는 등 많은 변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 분야는 국민과 농민 모두에게서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물론 쌀값은 농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매년 쌀값이 오르고 내리고는 것을 두고 이에 대응하는데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식량안보와 농민소득과 직결되는 부분으로 쌀값은 사실상 시장경제에만 맡겨둘 수 없다.

때문에 가격이 폭락했던 지난해 정부는 사상 유례없는 90만 톤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시켰다. 하지만 쌀 소비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10년 평균 쌀 생산량 감소율은 0.7%인 반면 1인당 쌀 소비량 감소율은 2.2% 수준에 불과하다. 논 농업은 기계화율이 98.6%에 달할 정도로 타 작물에 비해 재배는 쉽고, 소득률은 높아 진입 장벽이 낮아 쌀 생산량이 줄어들지 않는 것도 문제다.

농식품부는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최대한 쌀 재배를 밀과 콩 등 수입에 의존하는 작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동계 식량작물, 조사료, 하계 콩, 가루쌀 등 전략작물을 논에 재배하면 품목에 따라 ㏊당 50~430만 원의 직불금을 지급하는 전략작물직불제도 도입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직접적인 지원 대신 정책적인 방안으로 재배 품목을 바꿔 구조적인 쌀 과잉 상황을 해소하고, 수급과 농가 소득 안정을 이루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도 결국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매년 쌀을 비롯해 농산물, 축산물 가격이 움직일 때마다,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모든 책임의 화살은 공무원에게도 돌아오는 것이 사실"이라며 "농가 소득도 올려야하고, 물가도 잡아야 하고, 가축 방역도 신경써야 하는데 정작 지난 1년은 쌀값에만 매달렸다"고 토로했다.

전문성을 무시 당하는 것 같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을 사들이는데 필요한 비용이 1조4000억 원에 이르고 쌀값은 더욱 떨어지고, 쌀 재배농가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그 사이에 공무원들은 새우등이 터지는 꼴 밖에 안되고, 가지고 있는 전문성 마저 무시당하는 분위기"라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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