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칼럼] 낯설어진 자녀와 함께 춤을

입력 2023-07-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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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아이에 대한 이혼 부모의 면접교섭

임수희 수원지방·가정법원 안산지원 부장판사 칼럼

희철 씨는 전처 경숙 씨가 이번 주말에도 선호를 보내주지 않자 몹시 언짢았습니다. 선호 중학교 입학 후 3월 마지막 주에 한 번, 그리고 4월 첫 주에 한 번, 주말 1박 2일 방식의 면접교섭을 한 후로는 벌써 두 달째 선호를 못 보고 있었거든요.

‘선호가 피곤해서 안 가겠다고 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부부가 이혼하면 남이라지만 남보다 못하리만치 딱딱하게 사무적인 문자메시지만 일방적으로 보낸 경숙 씨에 대해 환멸의 마음이 일었습니다. 중학교 입학해서 적응해야 한다, 학원 보강 때문에 주말에 시간이 없다, 중간고사 준비를 해야 한다, 기말고사가 코앞이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더니 급기야 거두절미 그냥 아이가 피곤하다고 안 보내겠다니, 화가 난 희철 씨는 곧장 경숙 씨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니, 아이가 안 간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요.” 경숙 씨 역시 격앙된 목소리로 희철 씨가 따지는 말 하나하나에 지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나도 이번에는 꼭 아빠 보러 가야 한다고 여러 번 얘기 했다고요. 근데 ‘아, 안 간다고!’ 버럭 화내면서 자기 방문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걸 어떡해요.”

경숙 씨는 경숙 씨 대로 선호가 중학교 들어간 후 점점 상대하기 어려워지던 참에 희철 씨가 사정도 모르고 면접교섭 왜 안 보내 주냐고 들볶기만 하니 피로감은 말할 것도 없고 억울함이 밀려왔습니다. 학원이다 중간, 기말이다 하는 것은 핑계가 아니었어요. 실제로 아이 스케줄이 점점 빡빡해 지고 있었고, 희철 씨야 양육비라고는 하나 학원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보내주며 이래라 저래라만 할 뿐, 막상 선호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며 키우는 모든 일들을 오롯이 경숙 씨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고 여기며 무척 힘들어하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선호가 요즘은 부쩍 커지며 말수가 적어지고 웃지도 않고 자기 방에 들어가 문 닫아 걸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가고 경숙 씨가 말을 걸어도 대꾸는커녕 퉁명스럽게 반응을 해서 경숙 씨와도 가끔 부딪히곤 했습니다. 경숙 씨는 이 모든 상황이 버겁고 힘들어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 지경이었어요.

자, 이런 상황에 놓인 경숙 씨와 희철 씨는 선호와의 면접교섭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우선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첫 번째로 말씀드리자면, 자녀의 의사를 따른다는 이유로 비양육친과의 면접교섭을 중단하거나 막연히 미루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정확히는 사춘기 자녀가 피곤하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비양육친과의 면접교섭을 안하려고 하더라도 ‘비양육친과의 접촉 및 유대관계 유지, 그리고 정기적으로 만나서 함께 하는 시간 가지기’를 절대로 멈추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아빠(또는 엄마)와 만나고 싶지 않다’는 표면적 의사가 자녀의 진정한 의사 또는 자녀의 니즈(needs)가 아닐 수 있고, 설령 그것이 아이의 진의라고 하더라도 ‘함께 살지 않는 친부 또는 친모와의 관계 유지’는 민법상 ‘자의 복리(福利)’, 즉 아동권리협약상 ‘아동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 of child)’의 평가와 결정에 있어 아동의 견해 못지않게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아이가 부모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싶으실 텐데, 두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뾰족한 수는 없고 사랑과 인내로 자녀를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월시는 ‘10대들의 사생활’(시공사, 곽윤정 역)에서 ‘10대 자녀가 부모와 인연을 끊고 싶은 것처럼 행동하더라도 부모의 무한한 사랑을 자녀에게 끊임없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제가 담당했던 수많은 사례들에서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권하여 대부분 성공했던 방법은, ‘자주 문자하기’와 ‘그냥 함께 있기’였습니다. 즉 자녀가 면접교섭에 시큰둥한 태도를 보일 때 섭섭해 하지 말고 일단은 ‘알겠다’고 존중해 주되, 문자라도 자주 꾸준히 보내서 최소한의 접촉과 유대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녀가 답을 잘 안하거나 ‘예, 아니오’ 수준의 짧은 답만 하더라도 그 연령대 아이들의 자연스런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고, 중요한 것은 어쨌든 꾸준히 자녀와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비록 떨어져 살더라도 자녀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20호(2016): 청소년기 아동 권리의 이행’에 의하면 사춘기는 급속한 뇌 발달과 육체적 성장, 인지능력 향상, 성 인지의 시작, 새로이 드러나는 능력과 강점 및 기술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 발달의 독특한 단계로서, 청소년들은 의존성으로부터 보다 큰 자율성의 상황으로 전환하며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둘러싼 더 큰 기대를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데(9문단), 이와 같이 청소년기는 자율성 내지 독립성으로 향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의존성이 공존하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 의존하면서 안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냥 함께 있기’에 대해서는 사춘기 아이들과의 면접교섭 방법으로 권하고 싶은 세 번째 내용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인데요. 더 어린 연령대 아이들에게 있어서 부모가 ‘놀아주는’ 것이 중요했다고 한다면, 사춘기 아이들의 경우 부모와 거리를 두고 자녀 자신의 공간을 좀 더 확보해 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면접교섭의 방법에 있어서도 자녀와 만나서 굳이 무언가를 ‘함께 하려고 하기’보다는 만나서 한 공간에 ‘함께 있기’ 내지 ‘그냥 단순히 함께 지내기’가 보다 적절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대화’조차도 굳이 억지로 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자녀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의 흐름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이 권하더군요. 그렇게 함께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자녀가 다가와 말을 거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그럴 때 훈계나 잔소리를 늘어놓기 보다는 가급적 경청하는 자세로 많이 들어 주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마음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관계가 변화하게 된다고 합니다.

네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춘기 자녀를 둔 이혼 부모들 간의 ‘파트너쉽’의 재구축 필요성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면 냉소적인 태도로 부부간 또는 부모간 협력이 잘 되는데 굳이 이혼을 했겠느냐고 되묻는 부모님들을 종종 만났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양육 협력의 노력을 하셔야 부와 모와 자녀 모두가 삽니다”라고 답해 드립니다. 사춘기 자녀는 딸이든 아들이든 모 또는 부 혼자서는 정말 키우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자녀를 위해서라도 양육친 외에 다른 어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전문가들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쪽 부모와 관계가 틀어지거나 갈등이 생겨도 다른 쪽 부모와의 유대가 있는 아이는 크게 엇나가지 않을 수 있고 관계가 나빠진 부모도 다른 쪽 부모의 지원이 있으면 자녀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본 중의 기본인 ‘이혼 부모의 파트너쉽’은 ‘양육비’와 ‘면접교섭’이니, 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각자 그리고 함께 최선을 다해 해나가야 합니다.

결혼 중에도 안 되었던 ‘협력’을 이혼하고 나서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 보다는, 부부로서는 인연이 다하였지만 부모로서의 역할과 임무는 아직 한참 남았으니 새롭게 힘을 내 보시길 권합니다. 부부로서는 갈라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으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공통점이 있고 자녀를 잘 키우려는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그러한 공통점과 공동 목표에만 포커스를 맞춰 충분히 서로 협력할 수 있습니다. 물론 녹녹치 않은 과정이 있었겠지만 이혼 후에도 자녀 양육에 대해서만큼은 훌륭한 파트너쉽을 보이는 좋은 부모님들을 실제로 많이 보았으니까요.

앞서 본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20호(2016): 청소년기 아동 권리의 이행’에 의하면, 청소년기는 그 자체로 아동기의 귀중한 시기이지만 또한 중요한 전환기이며 삶의 기회를 개선하기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면서, 청소년기에 긍정적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 설령 아동기 초반에 어떤 고통을 겪었다 하더라도 아이는 그에 따른 결과를 일부 상쇄하고 미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회복력을 구축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춘기는 자라나는 자녀가 반드시 겪고 지나가야 할 삶의 한 단계로서 본인은 물론, 그 부모 모두에게 도전적인 시기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이혼이라는 상황과 사춘기라는 자녀의 생애주기적 과제를 조화롭고 지혜로운 해법으로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제가 봐 온 많은 이혼 부모님들이 이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 나가면서 자녀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 주셨으니까요. 몸과 마음이 자라며 낯설어진 자녀와도 새롭게 스텝을 밟아 나가며 멋진 춤을 추는 모든 부모님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임수희 부장판사는…

현재 수원지방·가정법원 안산지원에 재직 중이며 아동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면접교섭의 중요성 및 바람직한 방법을 안내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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