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한국닛산과 국민감정

입력 2020-06-08 15:05 수정 2020-06-0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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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차장

2004년, 한국닛산이 고급차 브랜드 ‘인피니티’를 먼저 앞세워 수입차 시장에 진출했을 때입니다.

당시 이 회사는 독특한 스타일의 론칭 이벤트로 눈길을 끌었는데요.

예컨대 수백여 명을 모아놓은, 기자들로 북적이는 보도발표회 대신 소규모 ‘그루핑(Grouping)’을 통해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한국법인장(미국인)이 직접 자동차 기자 10여 명을 특정 장소로 초청해 브랜드의 가치와 지향점, 제품의 특성을 전달하는 방식이었지요. 물론 이 과정을 십수 회 반복하며 전체 언론을 통해 브랜드를 알렸습니다.

이런 방식은 글로벌 인피니티가 추구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또는 미디어 시승회 때에도 이처럼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을 앞세워 브랜드 가치를 알리고는 했지요.

특정 국가(일본)에서 출범한 브랜드지만 이미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한국닛산에서 판매 중인 전 차종은 모두 미국에서 생산 중입니다.

한국닛산은 이렇게 인피니티의 성공적인 안착과 함께 대중차 브랜드인 '닛산'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한국토요타와 함께 한때 잘 나가던 한국닛산이 갑작스레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결국 일본차 불매운동 끝에 한국닛산이 철수한다”는 해설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닛산의 철수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로 시작한 ‘일본차 불매운동’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한국닛산이 '철수'를 발표하기 전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동시에 중장기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미래차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브랜드별 특화 전략을 추진한다는 게 골자인데요. 예컨대 닛산은 자율주행을 개발하고 르노는 커넥티드카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별로 집중할 지역도 나눴습니다. 르노는 유럽과 남미ㆍ북아프리카에 자원을 집중하고, 미쓰비시는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주력한다는 것이지요.

닛산은 이에 따라 일본과 중국과 북미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 내용을 담은 외신을 접한 뒤 "한국에서 인피니티만 남기고 닛산이 철수할 수 있겠구나"싶었습니다. 여전히 고급차와 고성능차가 인기를 누리는 만큼, 이 시장에서 인피니티의 당위성은 존재했으니까요.

그러나 이튿날 한국닛산은 결국 '철수'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와 유럽(스페인) 공장 철수도 결정했지요. 유럽에서는 일부 판매법인도 문을 닫을 예정입니다.

이를 두고 여러 언론이 "결국 불매운동을 못 견디고 닛산이 철수한다"는 해설을 속속 던졌습니다.

지난해 글로벌 닛산은 총 520만 대를 판매했고, 한국에서는 5000여 대를 판매했습니다.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0.09% 수준이지요. 미국 대도시 어느 전시장 한 곳보다 한국 판매가 적었던 것이지요.

한국닛산의 철수는 불매운동으로 인한 판매부진보다 글로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전략 수정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자동차 비즈니스는 눈앞의 1~2년을 내다보는 사업이 결코 아닙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 년 앞을 내다보며 경영전략을 짜고 제품을 개발하는 종합 산업입니다.

고작 몇 개월 사이 판매가 줄었다는 이유로 십수 년 유지해온 판매법인을 철수하지는 않습니다. 거꾸로 아무리 차가 잘 팔려도 '글로벌 사업개편'에 따라 판매법인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 정부의 정치적 막말과 역사왜곡, 나아가 비논리적인 무역규제는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릇된 판단을 냉철하게 비판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현실을 명확하게 짚어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한국닛산의 철수를 불매운동의 여파로 엮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ju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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