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김정희 보석디자이너 "위로ㆍ감동 줘야 진짜 명품…스토리가 먼저죠"

입력 2020-04-23 05:00 수정 2020-05-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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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미 정상회담 때 멜라니아 여사에 '88개 나비매듭' 선물

▲김정희 보석디자이너가 14일 서울 동작구 이투데이빌딩  eT라운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김정희 보석디자이너가 14일 서울 동작구 이투데이빌딩 eT라운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2017년 10월, 보석 디자이너 김정희 씨는 주한미군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조만간 귀빈이 방문할 예정이라며 매듭이 들어간 장신구를 준비해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어떤 이가 착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 김 씨는 "그걸 받을 사람이 누군지 모르면 작업을 못 한다고 답했다"고 했다.

다시 연락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리고 '멜라니아 여사는 빨간색을 좋아한다'라는 포인트를 전달받는다.

"방한 일정이 15일도 안 남은 상태에서 잠도 못 자고 작업에 몰두했어요. 국빈이 아닌 귀빈이라고 해서 멜라니아 여사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 못 한 상태에서 받은 연락이었어요."

김 씨는 루비와 핑크 사파이어로 만든 '88개의 나비매듭'을 장식해 주한미군에 전달했다. 한국에서 나비는 '행복'이나 '희망'을 상징한다. 루비는 생명의 상징으로 태양의 좋은 기운을 받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주 소재로 활용했다. 부부의 화합은 여든여덟 개의 매듭에 담았다. 나비 브로치를 왼쪽 가슴에 달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메시지까지 넣었다. 11월 7일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방한하고, 방문일의 밤에 보석이 전달됐다.

"제 스토리텔링을 보고 멜라니아 여사가 감동했다고 하더라고요. 한미 정상회담이 잘 되길 기원하는 제 마음도 담았어요. 매듭도 장인이 직접 만들어주셨죠. 제가 미국에서 초대전을 열면, 주한미군에서 백악관에 초대장을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김 씨는 2017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직전 주한미군의 요청을 받고 멜라니아 여사에게 전달된 보석을 만들었다.  (사진제공=포이베보석디자인연구소)
▲김 씨는 2017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직전 주한미군의 요청을 받고 멜라니아 여사에게 전달된 보석을 만들었다. (사진제공=포이베보석디자인연구소)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마친 김 씨를 최근 이투데이 사옥에서 만났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5일까지 '시간을 거스르는 아름다운 전설'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전시는 김 씨의 26년 활동을 결산하는 의미가 있다. 김 씨는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 최초의 보석 디자인 전시회"라며 "예술의전당에서 보석의 상업성이 아닌 예술성을 봐줬다"고 설명했다.

"15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어요. 5년 전 전시계획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방광암 3기 판정을 받으신 거예요. 희망이 없다는 얘기뿐이었어요.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두 달간 병원을 찾아다녔어요. 등산로에서 쓰러진 어머니에게 제가 생명수를 입에 넣어드린 꿈을 꿨어요. 그렇게 아무도 못 한다고 했던 수술을 성공하게 됐어요."

어머니를 살려보겠다는 의지를 담아 '생명의 나무'를 제작했다. 이 작품으로 김 씨는 세계디자이너대회 은상을 받는다. '전화위복'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다시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의료과실로 돌아가신 거예요. 전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49재를 치르는 동안 매일 어머니가 꿈에 나왔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항상 계시던 정원에 앉아있었어요. 그런데 노랑나비가 날아들더라고요. 그 나비는 제 곁에서 떠나지 않다가 제가 일어나자 정원을 한 바퀴 돌고 사라졌어요. 어머니의 부활 같았어요. 노란 나비는 부활의 상징이기도 해요. '나비 되어 날다'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1세대 보석디자이너인 김 씨는 자신의 보석에는 이야기가 보인다고 했다. 보석은 디자인을 빛나게 하는 조연일 뿐이라는 철학도 갖고 있다. 그의 전시가 열리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린 이유도 '스토리텔링'에 있었다.

"저는 고객의 종교, 직업, 나이, 생활습관을 다 봐요. 그 사람의 손목이나 관절, 의상 스타일을 본 후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들어요. 30년 전 결혼 예물을 리세팅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던가 어머니에게 물려받게 된 사연 같은 것이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면 울 수밖에 없어요."

김 씨는 '보석은 사치품'이라는 편견을 부수고 싶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전시를 감행한 것도,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보석을 본 누군가는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하던 후배 양성도 멈춘 채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다. 40대가 되면서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 주말이면 자연을 찾아 사계절의 흐름을 느낀다.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저의 철학이에요. 한국의 명품 보석을 만들고 싶어요. 대량 생산된 명품 브랜드의 보석이 아닌 'K 보석'을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세계적인 명품 보석과 제 보석을 두고 '블라인드 테스트'도 좋을 것 같아요.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아름다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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