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대통령선거, 국민은 이미 졌다

입력 2017-01-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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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지난해 총선 때 ‘국민은 이미 대패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여야 어느 쪽이 이기건 나라는 더욱 엉망이 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지난 총선은 선거가 아니었다. 선거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교과서적 기준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선거라 하면 일단 이기는 것이라도 목적으로 하는데, 그것조차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여야 모두 목표는 하나, 공천을 통해 당내 특정 계파의 패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당이 쪼개져도, 또 선거에 져도 좋다는 식의 행태를 보였다.

그 결과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이들은 모두 이겼다. 여당은 친박 패거리, 제1 야당은 친문 패거리를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민은 뭔가? 그러지 않아도 문제가 많은 정치는 더욱 엉망이 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총선 이후 정치는 곧바로 막장을 향했다. 대통령은 탄핵소추되고, 여당은 길을 잃은 채 쪼개졌다. 그리고 야당들은 국정은 내팽개친 채 성난 민심의 꽁무니에 붙어 대통령과 여당을 ‘잡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대선을 앞둔 시점, 나오느니 한숨이다. 공장과 공정이 좋아야 좋은 제품이 나오는 법. 이런 ‘정치공장’과 ‘정치공정’에서 좋은 후보가 나오고 올바른 비전과 올바른 정책이 나오겠는가? 정치권 밖에서 새로운 인물과 집단이 뛰어들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러기에는 이 못난 정치공장과 정치공정의 벽이 너무 높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주요 지표라 할 수 있는 수출 하나만 해도 그렇다. 2011년 국민총소득(GNI) 대비 113.5%에 달하던 무역의존도는 2016년엔 85% 안팎으로 내려앉았다.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다. 내수를 활성화한다고 하지만 나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길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만 해도 사드로 인한 보복 정도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훨씬 더 구조적이다. 이를테면 ‘차이나 인사이드’, 즉 부품과 소재를 중국산으로 사용하는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를 주로 수출하는 우리로서는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마저 중국은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중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도가 문제가 아니다. 자동화로 사람을 많이 쓸 필요가 없어지면서 글로벌 분업체계 자체가 변하고 있다. 즉 제조업만 해도 미국과 같이 소비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에너지 가격 등에 있어 유리한 나라가 새로운 강국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제조업 기반의 수출을 하는 우리로서는 큰 타격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산업구조와 인력구조 개편, 기술혁신, 자본시장 육성, 대학 및 평생교육체계 개혁 등, 수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게다가 국가운영체계도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새로 세워야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어야 하고, 수많은 사람이 재정을 분담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치집단이고 지도자라면 이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국민적 인내와 양보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비전과 전력이 있어야 하며, 필요한 정치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고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을 보라. 너나 없이 권력을 잡는 것, 그 자체에만 목을 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군 복무 기간을 줄이고, 공무원 수를 늘려 고용을 늘리고,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매일같이 달콤한 약속들만 하고 있다. 아니면 상대에 대한 극단적 험담으로 정치사회적 합의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두려운 마음으로 감히 말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다시 한 번 어느 쪽이 이기건 국민은 이미 졌다. 이긴 자는 곧 ‘승자의 저주’에 갇힐 것이고, 그 결과 국정은 다시 엉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은 더욱 길어진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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