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貨殖具案(화식구안)] 국가 간에도 '사회자본'이 있다

입력 2015-11-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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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최근 어느 모임에서 평생을 외교무대에서 활약하고 퇴임한 한 외교관의 ‘동북아 정세’에 대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연의 주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즘 남중국해와 TPP, 또는 AIIB 및 IMF의 SDR에 대한 위안화 가입 여부 등 사사건건 부딪히는 미국과 중국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 강연은 어찌 보면 토끼로도 보이고 어찌 보면 오리로도 보이는 모호한 그림을 슬라이드로 보여주고 “무엇으로 보이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강연의 핵심은 이 그림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일 수도 있으므로 더 이상 ‘이것이 오리이다’ 또는 ‘이것이 토끼이다’라는 이분법이 적용될 수 없다는 요지였다.

이것을 외교관계에 적용하면 최근에는 더 이상 ‘적 아니면 동지’로 구분 짓는 이분법이 사라지고, 경제라는 중요한 가치가 등장하면서 국가 간 외교관계를 결정짓는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미국과 중국 간에도 약간의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경제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예컨대 남중국해 같은 국지적 문제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의 강연 내용은 문제가 없었으나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즉 우리나라 외교의 입장에서도, 과거의 패러다임이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는 양자택일의 문제였다면, 현재의 입장에서는 양쪽 모두와의 친선을 추구하는 것이 전혀 모순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하여도 미국의 국익과는 모순되지 않으므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할 것처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요지였다.

일단 이분의 말씀이 현대 외교전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방점이 주어져 있다 생각하고, 또한 개인적 견해이므로 우리나라 외교부의 공식적 입장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강연이었다. 이분의 강연 요지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경제’라는 가치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교가 무엇인가?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에서 사람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듯이, 국제 관계에서도 국가 간에 맺어지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경제학에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이 있다. 즉, 인적자본이 개인플레이 개념이라면 사회자본이란 팀플레이 개념, 즉 그 사회 내의 인적 구성원들 간에 형성되어 있는 신뢰 등 무형의 자산을 말한다.

전직 장관 한 분은 과거 1980년대 미국에 유학 갔을 때 받은 문화충격을 얘기하곤 했다.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사가지고 돌아와 보니 한 덩이를 샀는데 두 덩이로 계산서에 찍혀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 기분이 나빴지만 이미 지나 버린 후라 포기하고 살다가 1주일 정도 후에 가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직원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고기 한 덩이 값을 환불처리해 주더라는 것이었다.

그 직원은 어떻게 그렇게 영어도 서툰 가난한 유학생의 말을 순순히 믿어주었을까? 이것이 바로 사회구성원 간에 형성되어 있는 신뢰, 즉 ‘사회자본’이라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대변해 주고 있다.

한번 반문해 보자. 우리 사회의 신뢰지수는 어떠할 것 같은가? 현대경제연구원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사회자본지수는 10점 만점에 5.07점으로, OECD 32개국 중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국제 신뢰지수는 어떠할까? 속으로 챙겨야 할 경제를, 대외적인 공식적 외교에서도 드러내 놓고 표방하면, 우리나라는 국가 간 외교관계의 신뢰지수도 더욱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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