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문희철 작가 "다양한 삶이 있는 이야기의 아파트를 짓고 싶다"

입력 2020-04-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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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살기란 어렵다' 출간한 문희철 작가가 3일 서울 동작구 이투데이빌딩 eT라운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 출간한 문희철 작가가 3일 서울 동작구 이투데이빌딩 eT라운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한때 서가는 자기계발과 힐링, 자존감과 관련된 이야기로 도배됐다. 현실을 살아내기 어려운 청춘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분위기가 만연한 까닭이다. 지나치게 '나'에 집중한 자기계발서들은 '나'가 마음을 고쳐먹으면 세상 살기가 쉬워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 책들의 순기능도 있다. 청춘들은 복잡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봤고, 현재를 정리하고, 미래를 계획했다.

신작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는 자기계발서임을 거부했다. 책은 당신이 살기 어려운 이유는 당신 탓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진정 제대로 살기 위해선 나와, 나와 관계하는 것들,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상의 불확실성은 생각보다 더 크게 우리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작가 문희철 씨는 3일 "살기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힐링을 추구하다 보면 삶의 다양한 어려움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며 "제대로 살기 위해선 우리가 마주한 삶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마주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는 문 씨의 20대 회고 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겪었던 24개의 어려움을 나, 나와 관계, 세상으로 나눠 풀어냈다. 책을 출간한 지금도 문 씨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난해 학교도 다니고, 기획자로서 일도 하면서 틈틈이 책을 썼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만났어요. 코로나가 오는 것은 제 노력만으로 막을 수 없었던 거죠. 오프라인 행사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파도가 온 것을요. 제 방식대로 파도를 타보려 합니다."

1990년생인 작가가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31살인 문 씨는 아직 홍익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다. 그는 "자퇴하고 재입학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씨는 21세에 자기소개서나 에세이 등 글로 쓰고 말로 하는 정성평가에 대비하는 청년교육업체를 창업했다. 그는 당시를 '돈 없는 구글 같았다'고 회상했다. 서울 왕십리에 사무실도 내고, 건물주랑 싸우고 쫓겨도 나면서 7년을 버텼던 그는 휴학 가능 기간인 3년을 모두 다 쓴 시점에 창업에 승부를 건다. 자퇴였다. 하지만 2016년 10월, 27살이었던 문 씨는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

"교육사업은 제가 입대하고 1년 반 정도를 더 버텼어요. 그때는 청년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자영업자들의 고군분투가 끝으로 치달을 무렵이었죠. 저는 의경으로 복무하면서, 제가 20대에 놓쳤던 부분들을 복기했어요. 해야 했는데 하지 않았던 일은 무엇이고,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 것은 무엇인지요. 결론은 저희는 창업에 뛰어든 게 아니라 빠져든 것이었어요. 용기가 필요했어요. 빠졌던 것에서 벗어날 용기, 새로운 시작을 마주할 용기, 가장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장 기본으로 돌아갈 용기요. 그래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문 씨의 노트 일부 발췌. (사진제공=문희철 씨)
▲문 씨의 노트 일부 발췌. (사진제공=문희철 씨)

그는 서울에서 53중대 기동대원으로 거리와 광장에서 촛불을 맞이했다. 탄핵이 가결되는 순간에는 국회 앞에, 이듬해 탄핵이 인용되던 순간에는 안국역 앞에 있었다. 교통 기동대로서 시민들과 집회참여자, 경찰 기동대원들 사이를 오가며 집회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했다. 거리와 광장에서 그는 '무표정의 관찰자'로 있었다.

문 씨는 이때 자신이 가진 가장 쓸모있는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날의 날씨, 온도, 습도, 기분 등을 세세하게 수첩에 적었다. 학교로 돌아와서는 자신이 살기 어려운 이유를 써봤다. 그렇게 그의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 기획이 시작됐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란 어렵고, 밥을 제때 챙겨 먹기란 어렵고, 부모님과 잘 지내기란 어렵다는 식으로 적어보니 100개가 넘더라고요. 이걸 또 집합화해보고 정수만 남기니 크게 세 가지가 나온 거죠. 삶의 어려움은 나, 혹은 관계, 세상으로부터 온다고요. 이와 관련된 글을 읽고 싶었는데 없었어요. 에세이 트렌드가 감성 지향적이다보니 관계나 세상에 대한 요소가 지워져 있던 거죠. 그래서 써봤습니다."

문 씨는 '운의 영역'을 강조한다. 그는 ‘사회적 성공 = (개인의 실력 보유한 자원의 활용) 곱하기(x) 운'과 같은 공식을 내세운다. 운은 불확실성의 영역이 큰데, 사람들은 이 영역을 노력으로써 제어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서퍼는 파도를 일으킬 수 없어요. 파도를 타는 사람인 거죠.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에요. 저는 20대 내내 창업을 했고, 살면서 남들보다 위험한 선택들을 했어요. 그 죗값으로 31살인데 대학생이에요. 제가 그동안 선택을 내릴 때 관계와 세상을 간과했다는 걸 알게 됐죠."

책에는 성공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문 씨는 "자기계발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만으로 성공하기란 어렵다고 말하고 싶었다"며 "우리의 노력이 운을 만나면 뜻밖에 잘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씨는 제대로 살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나, 나와 관계한 것들, 세상으로 나누어 고찰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문 씨는 제대로 살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나, 나와 관계한 것들, 세상으로 나누어 고찰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문제는 결정이나 선택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는지 여부예요. 그래서 청춘에게, 나에게, 인생에 부끄럽기도 해요. '나'에 대한 이야기로 책의 절반을 할애했어요."

그는 책에서 못 다룬 이야기를 담기 위해 팟캐스트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도 하고 있다. 작가가 직접 독자를 인터뷰하는 기획도 최근 시작했다. 팟캐스트는 50편, 독자 인터뷰는 100편을 채우는 게 목표다.

"다양한 삶이 있는 이야기의 아파트를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다양한 삶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광장에서 금속노조, 전국장애인연합회,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등 수많은 사람을 마주했어요. 이들은 세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보통의 사람을 만나 제대로 살기 위해 개인은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직접 물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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