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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시각] 당신의 시간과 내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시인, 인문학 저술가

여름은 구심력으로 여름 한가운데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연일 불볕 같은 폭염이 쏟아질 때 꽃 진 자리마다 잎들이 마구마구 피어났다. 자귀나무에 꽃이 피고, 배롱나무 가지에도 꽃이 피었다. 수목은 울울창창해져 검푸르게 출렁인다. 봄날의 기억은 지구에서 4억 광년 떨어진 궤도를 돌고 있는 행성 프록시마b처럼 까마득히 멀어진다. 우리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의 시간을 산다. 하지만 나의 현재와 당신의 현재는 똑같지 않다.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사물의 양과 특성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장소마다 다른 양자중력의 차이로 인해 이런 변화가 생겨난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현재는 확정할 수 없는 모호함 속에 있다.

같은 이유로 내 하루와 당신의 하루는 같지 않다. 우리의 시간은 다른 방식과 다른 리듬을 갖고 흘러간다. 사람들은 모든 장소에서 시간이 같은 리듬과 속도를 갖고, 과거에서 미래로 선조적(線條的) 흐름을 타고 흘러간다고 믿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시간은 하나의 방향, 하나의 흐름만을 갖지 않는다. 이 세계 안에는 다른 속도와 흐름이 존재하고,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수많은 시간이 존재한다. 달에서의 하루와 지구에서의 하루, 화성에서의 하루와 목성에서의 하루, 안드로메다 은하에서의 하루는 시간의 길이가 제각각이다. 날짜와 운동을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시간이란 없다는 게 현대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실체다. 우리는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는 사실쯤은 직관적으로 알 수가 있다. 과거엔 촛불이 더 밝게 빛나고, 젊은 어머니들은 더 기품이 있고 어여뻤고, 모든 이별이 만드는 슬픔은 더 날카로웠다. 우리는 더 밝고 아름답게 타오르던 촛불과, 더 기품이 있던 젊은 어머니들과, 더 날카로운 이별의 슬픔을 잃어버렸다. 그 사이 우리 재능은 평범한 것으로 바뀌고, 우리 삶을 빛내주던 고귀한 빛은 사라져 과거와 견줘 희미해졌다. 어제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갈 것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파동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생이라는 것은 우리가 겪어낸 시간, 운동, 흐름의 총량을 가리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내면에 남긴 무수한 기억의 무늬들. 우리는 그 무늬를 끄집어내 어루만지며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이론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시간의 본질을 탐구한 로벨리는 “모든 장소의 시간은 다른 리듬과 속도를 갖는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양자역학의 장(場) 안에서 시간은 유일한 것이 아닐뿐더러 장소마다 다른 리듬을 갖는다는 것이다.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흐르고,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른다.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 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은가? “여러 장소에서의 시간도 하나로 공통적이지 않지만, 한 장소에서의 시간도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전제 아래서만 당신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게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인생은 이런 시간 속에 빚어지는 사건이다. 벽과 벽 사이를 내다보는 사이 하얀 말은 눈 깜작할 새에 지나갔다. 어른들은 그게 세월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은 그토록 빨리 지나가고, 우리는 서둘러 나이를 먹으며 늙어간다. 우리는 생의 시간 속에서 여러 사건을 겪는다. 우연한 일들을 겪고, 거기에 필연적인 사건들이 겹쳐지며, 인생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맑은 날씨와 궂은 날씨가 번갈아가며 현존의 뜨락을 방문하고, 행운과 불운이 다른 시각에 찾아온 손님인 듯 우리를 방문한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나눌 때 우리는 우주적 시간 속에서 우주적 파동 그 자체로 존재했다. 그때에도 버드나무와 회양목은 봄마다 잎을 피우고, 매미와 잠자리는 날개를 얻어 공중을 날고, 매미는 여름 내내 시끄럽게 울어댔다. 심장이 쪼개질 듯한 고통 속에서 첫 사랑을 겪어낸 뒤 우리는 세월이 얼마나 무정하고 덧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했다. 지금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유로 당신과 나는 헤어졌다. 그 뒤로 당신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엇갈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속도로 흘러가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시간이 만든 열매가 공평하고 정의롭게 나뉘지 않는다는 건 변화하지 않는 사실이다. 사회적 약자를 내치고 그들이 가져야 할 몫을 부당하게 빼앗아 누리는 자들의 탐심은 여전히 꿋꿋하고 사납다. 며칠 전 서울의 제화 기술자들이 한곳에 모여 삭발을 하고 시위를 벌였다. 제화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인 까닭은 구두를 짓고 받는 공임이 지나치게 작았기 때문이다. 백화점이나 홈쇼핑에서 높은 수수료율을 떼는 탓에 제화 노동자의 공임이 낮아졌다고 한다. 판매 수수료율이 높아지면서 하청공장의 납품단가가 내려가고, 이에 따라 제화 노동자의 공임도 덩달아 깎인 까닭이다. 제화 노동자들은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6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 30만 원짜리 구두 한 켤레를 짓고 손에 쥐는 돈이 달랑 7000원 안팎이라고 한다.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빚어졌는가? 이것은 복잡하게 꼬인 유통구조와 여기에서 발생하는 유통 마진이 커서 생긴 어처구니없는 사태다. 이런 유통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화 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더 힘들게 일하는 제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야 공평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들보다 더 조금 수고하는 중간 유통업자들이 더 많은 돈을 챙기는 한 이 세상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더 좋은 세상에서는 더 오래 일하고 더 수고하는 사람이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게 마땅한 일이다.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주에서는 2014년에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때 바닷속 화산이 폭발하면서 작은 섬이 생겨났다. 지진으로 인해 진흙 화산이 폭발하면서 수중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이 섬이 최근 감쪽같이 사라졌다. 높이 20미터, 너비 90미터, 길이 40미터로 그 형체를 드러냈던 섬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지구관측 위성에서 포착될 정도였다. 이 섬은 죽은 바다 생물들, 진흙과 모래, 바위로 뒤덮여 검은 색을 유지해 왔다. 관광객들도 멀리서나마 이 섬을 관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다 위로 솟구쳐 생겨난 섬은 6년이 지나 사라진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인도양의 거친 날씨와 파도를 꿋꿋하게 견디고, 바다의 조수 작용으로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더니 이젠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정확하게는 2016년 11월부터 모습을 감추더니 마침내 올해 4월경 위성사진에서 사라져 더 이상 관측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섬은 수중에 가라앉은 형태로 그 흔적을 보여주지만 그마저도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렇듯 시간은 흘러가면서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고, 있던 것을 사라지게도 한다.

닫힌 시간의 곡선 안에서 나는 오래 울었던 적이 있었던가? 당신이 떠난 뒤 내가 견뎌야 할 시간의 밀도와 리듬이 달라져서 힘들 것임을 알았다. 시간의 유일성과 통일성이 전과 달라질 것이란 내 예감은 적중한다. 과연 나 혼자 맞는 시간의 흐름과 속도가 달라지고, 순서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리고 당신과 내가 함께 있을 때보다 시간이 내게 덜 우호적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그 때문에 나는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혼자 감당하는 나 스스로가 불쌍해서 울었다. 저 우주의 시간과 지구에서 우리가 겪는 시간은 다르다. 우리는 다른 속도와 흐름을 가진 시간 속에서 탄생과 죽음을 겪고, 인연을 만나 사랑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갖가지 실패와 성공, 희로애락을 겪는다. 당신과 내가 오늘을 함께 살아도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장석주 시인, 인문학 저술가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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