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 보고서]인희, 6년간 ‘벽산건설 이별 앓이’...결말은 두 번째 법원行

입력 2019-03-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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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인희, 벽산건설 지독한 사랑이 남긴 두 번의 회생절차 스토리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기형도 ‘빈집’ 중)

여기 지독한 사랑과 이별한 뒤 그 충격에서 6년째 헤어나오지 못하는 기업이 하나 있다. 건설자재 제조사 ‘인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희는 ‘블루밍’이라는 브랜드로 알려진 자회사 벽산건설과 ‘짝패’를 이뤄왔다. 인희는 벽산건설의 지분 과반을 보유하며, 매출의 90% 이상을 벽산건설로부터 가져왔다.

하지만 두 기업이 긴밀한 관계를 이어온 것은 약이자 독이었다. 부동산 시장 위기에 벽산건설이 무너지자 인희도 속절없이 몰락한 것이다. 6년이 지난 현재 두 번째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인희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동양물산’이라는 한 뿌리… 관계의 시작 = 벽산건설과 인희가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9월 8일. 이날 동양영화가 인희산업을 흡수합병하면서 인희가 탄생했다. 벽산건설은 이미 1991년 3월 한국건업이 상호를 변경하면서 세상에 처음 나왔다. 벽산건설이 인희보다 3살 많은 셈이다.

그런데 이 두 회사의 뿌리는 사실상 하나다. 고(故) 김인득 벽산그룹 전 명예회장이 1951년 부산에 설립한 동양물산이다. 당시 동양물산은 영화배급업과 극장업을 주로 하는 무역업체였다.

영화사업은 성공가도였다. 1952년 영화 사업 부문만을 분리해 동양영화를 만들었다. 인희의 모태 기업이다. 이후 김 전 회장은 전국의 극장들을 사들였다. 서울의 단성사와 중앙극장을 인수했고, 부산 대영극장, 대구 만경관, 대전 중앙극장, 광주 동방극장 등을 사들였다. 1959년에는 반도극장(현 피카디리)까지 설립하며 전국에 영화관 100여 곳을 소유한 ‘극장 재벌’이 된다.

김 전 명예회장은 영화산업과 동시에 건설업에도 발을 들인다. 1958년 11월 동양물산에서 설립한 대한스레트회사는 벽산건설의 모태다. 슬레이트 제작이 주사업이었다. 대한스레트회사 또한 승승장구한다. 1963년 제일스레트공업을 인수하고, 1972년에는 한국스레트로 상호를 바꾼다. 이어 건설사업 부문만 따로 떼어 한국건업을 새로 설립했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벽산건설과 인희. 특히 인희사업을 흡수하면서 건자재 유통, 주택 건축업 등까지 사업을 확장한 인희는 건설사업을 영위하고 있느 벽산건설과 최상의 파트너 관계를 이룬다. 실제로 벽산건설은 인희의 자회사이자, 핵심 거래처였다. 2011년 말 기준 인희는 벽산건설의 지분 52.1%를 소유한 최대주주였다. 매출의 90% 이상이 벽산건설에서 나왔다.

시민사회에서는 이 관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기도 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과거 소액주주운동(장하성 펀드)을 할 때 이 둘의 관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장하성 펀드란 일명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다.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의 지분을 일정 수준 인수해 경영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차원에서 조성된 펀드다.

오너일가가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인희와 벽산건설의 내부거래를 통해 사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장하성 펀드도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했지만 결국 이 둘을 떼어놓진 못했다.

◇벽산건설의 파산… 이별과 그 이후 = 이 관계에 결정적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12년 6월 26일이다. 위기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 그중에서도 벽산건설에서 불거졌다. 부동산 경기 악화와 미분양 사업단지 물량 과잉 등에 따른 경영난이 벽산건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벽산건설의 매출은 2011년 1조3454억 원에서 2012년 6675억 원으로 1년 만에 반토막났다.

이런 경영 악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벽산건설은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덩달아 벽산건설의 ‘짝패’ 인희도 같은 해 회생절차에 들어간다. 핵심 거래처가 회생절차 신청에 들어가자, 매출채권 회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벽산건설의 위기는 그 전에도 있었다. 1998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벽산건설은 한 상업은행의 요구에 따라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2002년 10월 전환사채 인수 등 출자전환 등을 거쳐 정상경영 체제로 되돌아왔다. 위기는 곧 기회로 바뀌었다. 그 이후 벽산건설의 경영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2001년 국내 도급순위 18위에서 2003년 15위로 오른 것.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나마 초반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회생법원이 그해 11월 벽산건설의 회생계획을 인가한 것. 계획안에 따라 출자전환이 이뤄지고, 이에 따라 최대주주는 인희에서 우리은행 등 채권단으로 바뀌었다. 인희와 벽산건설의 첫 이별이다. 이와 함께 벽산건설은 벽산그룹에서도 분리됐다.

이후 벽산건설은 M&A를 통한 채무 해소를 목표로 삼았다. 한영회계법인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우선협상대상자에 중동계 컨소시엄인 아키드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하지만 결국 매각은 무산됐다.

벽산건설과 인희의 운명은 끝내 엇갈렸다. 인희는 2013년 7월 회생절차를 최종 졸업했다. 하지만 벽산건설을 결국 2014년 파산행에 이른다. 회생계획 인가 이후에도 건설경기 침체와 신용도 하락에 따른 수주 감소로 벽산건설의 매출액이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변제하지 못하는 등 회생계획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혼자 살아남았지만, 최상의 파트너를 잃은 인희는 지지부진한 영업실적을 이어갔다. “연결실체(인희)의 재무구조 악화 원인은 종속기업에 있으므로 벽산건설의 경영 정상화가 계속기업 존속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011년 인희의 사업보고서에 명시된 내용이다. 실제로 벽산건설의 그림자는 짙었다. 과거 수천억 원대였던 인희의 매출은 2014년 54억 원, 2015년 32억 원, 2017년 46억 원 등 회생절차 졸업 이후로도 좀처럼 개선되지 못했다.

인희는 결국 6여년 만에 다시 회생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인희 관계자는 “주 거래처였던 벽산건설의 파산, 부동산 경기 침체, 재개발 및 재건축 규제 강화로 인한 매출 부진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인희는 회생절차 신청서를 접수했고, 해가 넘어 1월 14일 회생법원은 절차 개시를 선언했다. 인희는 내달 8일 회생계획안 제출 시한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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