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금강안 金剛眼 혹리수 酷吏手

입력 2019-03-13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고미술 평론가, 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미술시장에서 가짜(僞作)의 존재는 숙명적이다. 그 들풀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꺾어야 하는 감정(鑑定)의 입장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짜와 감정, 사람들은 이 둘을 두고 악과 선으로 대립시키기도 하고, 피할 수 없는 싸움판의 창과 방패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 대결의 치열함(?) 때문일까, 이야기는 풍성하고 관전하는 재미가 있다.

가짜와의 싸움은 대개 시간이 흐르면서 진위가 확인되어 승패가 가려진다. 한편으로 결론이 나지 않아 무승부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 대상에는 근현대 미술품도 있고 심지어 생존 작가들의 작품도 있지만 논란의 중심은 역시 고미술이다. 만들어진 지 짧아도 100~ 200년, 길게는 수천 년이 지난 탓에 제작 기록이나 소장 이력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분석 결과나 검색용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몇 안 되는 소위 이 분야 전문가들의 주관적인 감식 의견에 좌우되기 마련이고, 결과에 대해서도 시비가 따르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듯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만큼 어려운 것이 감정이다. 그 어려움에 대해 조선 후기 서화의 대감식안 추사 김정희는 “진정한 감정은 금강력사의 부릅뜬 눈과 혹독한 세무관리의 손으로 한 치 빈틈없이 무섭고 가혹하게 나아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금강안 金剛眼 혹리수 酷吏手)”고 하였다. 온 정신과 오감을 집중하여 눈에는 다이아몬드의 강기를 담아 작가의 손놀림은 물론이고 필획이 일으킨 바람의 흔들림까지 감지하는 섬세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 의미를 조금 확대하면, 감정은 진위의 차원을 넘어 작품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탄생의 비밀을 밝히고 살아온 이력을 살펴 잃어버린 존재의 가치를 복권시키는 날카로운 눈매에다, 위장된 생명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차가움이 있어야 한다. 비유컨대 유물의 복권(復權) 여부를 결정하는 감정은 원인 모르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부검(剖檢)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감정의 그 엄중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시대에 따라 많은 감정 결과가 가변적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적이 당황스럽게 한다. 새로운 자료와 기법이 등장하고 인간의 지력이 진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변덕스런 인간성 때문인지 어제의 진품이 오늘은 가짜가 되고, 어제의 가짜가 오늘은 진품으로 판정되기도 한다. 어쩌면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는 미술품 감정의 그런 무상(無常)함이 이 세계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상거래에서 감정의 의미는 좀 더 현실적이다. 정확한 감정은 일차적으로 가짜의 범람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또한 미술품 시장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함으로써 거래 과정에서 생기는 경제적 비효율과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 즉, 진위에 대한 정보가 시장참여자들에게 폭넓게 공유될수록 미술품 컬렉션이나 거래에 수반되는 비용과 불확실성은 최소화되고 나아가 시장구조의 안정화와 규모 확대는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확한 감정과 그 결과에 대한 신뢰는 미술시장을 안정시키는 닻(anchor)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닻의 무게가 너무 가벼운 탓일까, 미술시장은 가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심하게 출렁거렸고 지금도 그 가능성이 곳곳에 잠복되어 있는 형국이다. 지난 30년 넘게 현장을 지켜본 나의 눈에는 그것이 한 편의 드라마 같기도 했지만, 때로는 사람들의 뒤틀린 본성을 떠올려야 하는 고통이 뒤따랐고, 악도 사람의 본성일 거라는 합리적 의심에 몸서리칠 때도 많았다.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추사의 말처럼 감정은 예나 지금이나 감각과 직관에 크게 좌우되는 영역이다. 과학적 접근이 여의치 않는 부분이 많다는 말이다. 그 부분을 남아 있는 기록이나 기억, 이 시대의 미감으로 메운다면 그것은 나름 최선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는지, 가짜는 곳곳에서 활개 치고 있고 그것을 걸러내야 할 감정의 그물은 성글기만 하다.

나는 소망한다. 진품이 가짜로 판정되어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져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가짜가 진품으로 판정되어 박물관 미술관 이곳저곳에 얼굴을 내미는 모습만은 정말 안 보고 싶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종합] "대중교통 요금 20% 환급"...K-패스 24일부터 발급
  • '빅테크 혼조'에 흔들린 비트코인, 변동성 확대…솔라나도 한때 7% 급락 [Bit코인]
  • "불금 진짜였네"…직장인 금요일엔 9분 일찍 퇴근한다 [데이터클립]
  • '범죄도시4' 개봉 2일째 100만 돌파…올해 최고 흥행속도
  • “안갯속 경기 전망에도 투자의 정도(正道)는 있다”…이투데이 ‘2024 프리미엄 투자 세미나’
  • "한 달 구독료=커피 한 잔 가격이라더니"…구독플레이션에 고객만 '봉' 되나 [이슈크래커]
  • 단독 교육부,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은 ‘2000명’ 쐐기…대학에 공문
  • 외국인이 준 초콜릿에 수상한 '구멍'…유튜버 "상상도 못 해"
  • 오늘의 상승종목

  • 04.25 12:41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3,300,000
    • -2.76%
    • 이더리움
    • 4,562,000
    • -2.15%
    • 비트코인 캐시
    • 692,000
    • -5.27%
    • 리플
    • 762
    • -3.18%
    • 솔라나
    • 211,900
    • -6.2%
    • 에이다
    • 688
    • -4.71%
    • 이오스
    • 1,360
    • +12.21%
    • 트론
    • 166
    • +2.47%
    • 스텔라루멘
    • 165
    • -3.51%
    • 비트코인에스브이
    • 97,850
    • -5%
    • 체인링크
    • 21,090
    • -4.09%
    • 샌드박스
    • 668
    • -5.25%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