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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액땜했나요?

편집부 교열팀장

서민에게 친근하고 부담 없는 먹거리로 두부만 한 것이 있을까. 어린 시절 출출한 저녁 시간이면 딸랑딸랑 소리와 함께 들리던 두부 장수의 “두부 왔어요” 외침이 몹시 반가웠다. 갓 만들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에 참기름 넣은 양념간장을 얹어 먹으면 그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먹거리가 많지 않던 그 시절 두부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뽀얗고 영양 많은 이 두부는 관재(官災)가 있을 땐 액땜으로도 먹었다. 감옥에서 출소한 사람이 두부 한 모를 손에 들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먹는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았을 터이다. 외국에는 없는 우리만의 풍습이다. 명확한 기원을 알 수 없지만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징역살이를 속된 말로 ‘콩밥을 먹는다’고 한다. 두부는 콩으로부터 풀려난 일종의 자유 상태이니, 다시는 옥살이를 하지 말라는 당부나 염원쯤이 되지 않을까.”

관재는 관액(官厄)과 같은 말로, 관청에서 비롯되는 재앙이다. ‘액’은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의미한다. 우리는 생각지 않은 나쁜 일이 생기면 흔히 “액이 끼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생활에 액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액이 닥쳐올 것을 막아 무사히 넘기거나 다른 가벼운 어려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큰 액을 때우는 것이 ‘액땜’이다. 액을 미리 막는 ‘액막이’, 얽힌 실타래를 풀 듯 액을 서서히 풀어주는 ‘액풀이’도 같은 의미로 쓸 수 있다.

액땜, 액막이, 액풀이는 요즘 같은 연초에 특히 많이 듣는 말이다. 교통사고로 차가 망가지면 “사람이 안 다쳤으니 연초에 액땜한 셈 쳐”,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면 “머리를 다치지 않았으니 액땜한 거야”라고 위로한다. 또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시험에 떨어져도 그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며 “액땜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러고 보니 현재 처한 상황보다 더 큰 어려움, 혹은 더 심한 고통을 막아주는 액땜은 고마운 존재이다.

이달 초 ‘건강’을 새해 목표로 정한 지인이 산을 오르다 다리를 다쳐 입원했다. 현장기자로 이곳저곳을 누비던 사람인지라 병원 침대에만 누워 있으려니 답답해 죽을 지경일 게다. 병실로 찾아가 “그동안 일을 너무 많이 했으니 잠시 쉬라는 액땜”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답이 돌아온다.

꿈도 해석하기 나름. 언짢은 장면의 꿈일지라도 그럴듯하게 돌려 생각해 긍정적으로 풀이하면 결과적으로 좋은 꿈이 된다. 액땜과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속담이 통하는 대목이다. 우리 선조들의 긍정적 사고방식에 무릎을 치게 된다.

감기·독감이 유행인 최근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순우리말 ‘개치네쒜’, ‘에이쒜’도 액땜용(?) 감탄사로 볼 수 있다. 재채기를 한 뒤에 이 소리를 외치면 감기가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간다고 하니 말이다. 어원을 알기 어렵지만 어감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의미가 전달되는 듯하다. 물론 “그깟 감탄사가 감기를 어떻게 물리쳐? 자고로 감기엔 고춧가루 탄 소주가 ‘직빵(직방의 잘못)’이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아직도 여럿이다. ‘개치네쒜’나 ‘고춧가루 탄 소주’가 감기에 직방일 리가 없다. 내 경험상 감기에 걸렸을 땐 푹 쉬면서 잘 먹고 땀을 흠뻑 내는 게 가장 좋다.

새해 첫 달을 하루만을 남겨 두고 있다. 연초(아니 살아가는 내내) 액이 안 들어오면 다행이지만 누구나 액이 없을 순 없는 법. 삶을 돌아보며 좋은 생각으로 액을 잘 막고 잘 풀고 잘 때워야 운이 확 트일 것이다.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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