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물곡비(勿哭碑) (1)

입력 2018-11-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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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필자는 개인적으로 임제(林悌) 선생을 특별히 존경한다. 천재적 시재(詩才)도 존경하지만 그 높은 기상과 호방한 풍류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의 호가 ‘백호’이기 때문에 흔히 ‘임백호(林白湖)’ 선생이라고 부른다. 전남 나주에는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3년에 세운 백호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근처 영모정 아래에는 ‘물곡비’라는 비석이 있다.

물곡비는 ‘勿哭碑’라고 쓴다. ‘碑’는 당연히 비석이라는 뜻이다. ‘勿’은 ‘말 물’이라고 훈독하는 글자인데 ‘하지 말라’는 뜻이다. ‘哭’은 ‘울 곡’이라고 훈독한다. ‘勿哭碑’는 글자대로 풀자면 ‘울지 말라고 한 비석’이라는 뜻인데, 이는 임백호 선생의 유언을 새긴 비이다.

비의 내용은 이렇다. “중국의 주변에 있는 네 오랑캐와 여덟 미개 민족도 다 황제를 칭했는데 유독 조선만 스스로 중국 속으로 들어가 중국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으니 내가 살아본들 무엇을 할 수 있겠으며 내가 죽은들 또 무슨 일이 있겠느냐? 울지 마라.[四夷八蠻 皆呼稱帝, 唯獨朝鮮, 入主中國, 我生何爲, 我死何爲? 勿哭!]”

중국이 오랑캐라고 부르며 야만시했던 주변의 이민족인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등은 다 황제를 칭한 적이 있다. 선비족이 세운 북위(北魏)제국이 그렇고, 당항족(黨項族)이 세운 서하(西夏)제국, 거란족의 요나라, 몽골족의 원나라, 여진족의 금나라와 청나라가 다 황제를 자칭했다. 이처럼 중국 주변의 이민족들도 다 한 번쯤은 스스로 일어나서 황제를 칭하는 제국을 세웠는데 그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이 중국을 주인으로 섬기기만 해온 우리 역사의 사대성(事大性)을 임백호 선생은 통렬하게 한탄한 것이다.

가슴이 먹먹하게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한 글이다. 당시 사대주의에 절어 있던 조선의 조정과 선비들을 향해 임백호 선생 말고 이런 통탄을 한 인물은 아무도 없다. 21세기, 오늘을 사는 우리도 뜨겁게 느껴야 할 통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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