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노동이사 논란 자체가 침소봉대”

입력 2017-12-01 10:49 수정 2017-12-3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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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주주제안으로 지극히 시장적인 행위…국민연금 ‘찬성’도 상식적 결정”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1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사회책임투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최순실 사태’의 단초 중 하나였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를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권고한 인물이다. 류 대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기관인 작은 회사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여전히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연금의 600조 원은 1원도 소중한 돈”이라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1일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사회책임투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최순실 사태’의 단초 중 하나였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를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권고한 인물이다. 류 대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기관인 작은 회사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여전히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연금의 600조 원은 1원도 소중한 돈”이라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2.8%’

유가증권(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기업 882곳 중 지난해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반대 의견을 한 차례 이상 표명한 적 있는 기업의 비율이다. 900개에 달하는 기업 중 25곳을 제외한 모든 기업에서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에 전부 찬성표를 던졌다. 사외이사들은 연평균 4~7회 수준인 이사회에 참석하고 수천만 원의 연봉을 받아간다. 말 그대로 ‘거수기(擧手機)’인 셈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경영 감시 기능을 상실한 현 사외이사제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노동이사 도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노동이사제가 기업경영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우려하지만, 아무런 감시 체계가 없는 현 기업경영의 실태야말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 노동이사제 도입에 재계 반발이 심한데

“늘 그렇듯 침소봉대(針小棒大)다. ‘노동이사제’라는 단어를 편협하게 이해한 것이다. KB금융 노조가 지분을 모아 주주 자격으로 사외이사를 추천한 것에 대해 ‘노동이사’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개정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합법적인 주주 제안일 뿐이다. 2015년 KB금융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으로 촉발된 ‘KB 사태’ 당시 경제개혁연대가 지분을 모아 추천한 사외이사 세 명(이병남, 김유니스, 박재하)은 ‘시민단체 이사’가 아니다. 누구든 일정한 지분을 갖고 주주로서 주주제안 요건을 갖추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특히 감시 기능을 상실한 현행 사외이사 제도하에서는 견제 위치에 설 수 있는 이사들이 많아야 한다. 상법이 개정돼 본격적으로 노동이사제가 도입된다면 현재 사외이사 제도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그러나 이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이사가 얼마나 주주 보편의 이익을 추구하는가’이다. 노조가 추천하든, 시민단체가 추천하든, 특정 주주집단이나 소비자가 추천하든, 이와 상관없이 특정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아닌 해당 회사와 주주 전반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추천된 사외이사가 신의 의무와 충실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인물인지, 전문성이 있는 인물인지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내년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노동이사제 도입을 주주제안할까

“국민연금이 상법 개정 전 노동이사제를 선행하는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변화다. 다만, 이번 KB금융의 노조 추천 이사에 대한 찬성표를 던진 것과 같은 상식적인 결정은 당연할 것으로 본다. 노동이사제는 국민연금이 곧 도입할 스튜어드십코드 차원에서도 당연하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국내에서 흔히 ‘주주행동주의’로 통용되지만, 이는 너무 단순한 번역이다. 인간은 이 환경을 잠시 관리하고 살다가는 스튜어드(steward)로서 잘 보존해서 후세대에 넘겨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주인의 돈을 대신 관리하는 집사로서 돈 주인의 필요와 원칙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임박했는데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논의는 벌써 수년째 진행 중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에서 7가지 원칙과 세부적인 실행사항까지 내놨고 서스틴베스트를 비롯한 몇몇 운용사들이 이미 도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아직도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아닌 연구원이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스튜어드십코드 용역을 줬고 고려대는 이 연구를 다시 CGS에 하청을 줬다. 기금운용본부가 아닌 연구원이 발주한 연구라는 데 실효성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또한 CGS가 발표한 스튜어드십코드에는 가장 중요한 ESG(환경경영·사회책임경영·기업지배구조) 원칙이 빠지고 대신 기업의 ‘지속성장’이라는 애매한 용어가 들어갔다. 국민연금이 내놓을 스튜어드십코드에서도 ESG원칙이 빠지고 CGS 차원의 코드와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면 지금까지 시간 끌기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국민연금은 이제 외부용역으로 스튜어드십코드 논의를 할게 아니라 실제 운용자들끼리 이를 어떻게 어느 범주까지 스튜어드십코드를 적용할지, 어떤 본부에서 진행할지 등 실무적인 부분을 협의하고 논의할 단계다.

- 국민연금 사회책임투자(SRI) 어디까지 와 있나

“벌써 10년 정도 진행됐고, 6조3000억 원 정도 SRI 유형에 배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책임투자가 아니라 사실상 대형주 투자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외 연기금은 맥킨지 등 컨설팅 기관과 함께 장기투자 철학을 세우고 이와 관련한 워크숍 등을 상시로 개최해 실제 운용에 반영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SRI 펀드를 운용할 운용사를 선정하고 이후 수익률을 체크하는 것이 고작이다. SRI 위탁 운용사를 선정할 때 ‘ESG 고려, 술·담배·도박 등 관련 회사 투자 제외 등 기본적인 조건을 제시할 뿐이다. 따라서 실제 사회책임투자와 거리가 먼 운용사들도 해당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마이다스에셋의 경우 SRI 위탁 운용사에 지원하면서 서스틴베스트의 ESG 자문을 받는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위탁운용사 선정 1년 후 바로 자문계약을 해지하고 자체적으로 1명의 ESG 연구원을 고용해 비용 절감에 나섰다. 전문 ESG 자문회사에서 20여 명의 연구원들이 해야 하는 역할을 신규 채용한 1명이 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전혀 사후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 사회책임투자란 ‘ESG 원칙에 맞게 장기주의 관점에서 운용하고 스튜어드십코드에 입각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투자’를 말한다. 국민연금은 사실상 사회책임투자를 못하고 있다. 책임투자 정책서와 책임투자 가이드라인부터 제정해야 한다. 특히 SRI는 국민연금이 내년에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다면 그 선상에서 반드시 함께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 최근 일본 연기금의 변화가 화제인데

“일본 공적연금(GPIF)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미즈노 히로미치(水野弘道)를 최근 3차례 만났다. CIO 한 명의 변화가 일본 연기금의 방향을 선진적으로 만들어놨다. 그는 연기금이 ‘유니버설 오너(universial owner)’라는 생각을 체화하고 있는 인물이다. ‘유니버설 오너’란 연기금이 투자대상 기업 한 곳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오너로서 이익과 비용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연기금의 투자와 운용성과는 국민경제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 연기금들은 이를 근저에 깔고 투자하고 있다. 예컨대 한전은 석탄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면 단가가 싸므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대기오염으로 국민 건강이 악화되는 등 부정적인 외부 효과가 크다. 유니버설 오너로서 국민연금은 석탄발전을 통해 극대화된 한전의 이익만 봐서는 안 되고,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이익과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 CIO 한 명이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ESG와 장기투자 등 연기금에 맞는 철학을 가진 CIO가 등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국민연금 자체가 기금운용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한다. 현재까지는 기금운용을 자본시장 등 금융업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도맡아 왔다. 이에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 등 정량적인 수치로만 기금 운용을 구상하게 됐다. 기술적인 운용을 맡을 자본시장 운용역 외에도 실제 산업군을 잘 아는 연구진이나 자문역들이 대거 들어와 인적 쇄신을 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셀사이드에서 산업군 애널리스트들이 관련 보고서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제 각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연금에 포진해야 한다.”

- 금융위가 국민연금의 코스닥 투자를 10%로 늘리겠다고 했는데

“투자비중 목표를 설정한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국민연금이 코스닥시장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겠다는 식의 발표가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투자비중을 10%까지 확대하겠다는 정량적인 목표의 금융위 발표가 나와서 사실상 제대로 된 소통이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니버설 오너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경제가 건강하게 발전해야 장기 수익률도 상승한다. 그렇다면 연금은 결국 커나가는 코스닥 기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기준과 관점에서 히든챔피언으로 선별할 것인지, 그들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국민연금은 케첩투자 하고 있어”… ‘금융의 딴짓’ 비판

류영재 대표는 지난 9월 영국의 경제학자 존케이의 책을 번역해 출간했다. 원제는 ‘타인의 돈(Other People's Money)’이지만 ‘금융의 딴짓’으로 제목을 바꿔 내놨다. 타인의 돈을 신의와 충실로 지켜야 할 금융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잘못된 관행과 문화 이기적 행태를 지적하는 내용이 주를 이뤄서다. 이러한 측면에서 류 대표는 현재 국민연금 역시 ‘케첩투자’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래리 서머스가 설명한 케첩 경제학과 토마토 경제학을 빗댄 것이다. 케첩시장을 분석할 때 경제학자들은 케첩 500g 가격이 1000원일 때 1kg 가격이 2000원인 시장은 효율성이 있다(정상적인 시장이다)라고 기계처럼 분석한다. 반면 토마토 경제학은 단순히 양과 가격의 관계만이 아니라 케첩 가격을 결정하는 토마토와 대체재 시세, 노동비용, 소비자 소득 추이 등 수요와 공급 요인을 총괄한 입체 분석을 말한다.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을 중시하는 현재 국민연금 투자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다. 류 대표는 이달부터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자본시장분과 위원을 맡아 금융당국 자본시장 정책에 자문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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